판소리 조경곤 교수

 
 

저는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 받았습니다. 국악이라는 세계는 참으로 어려워서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고수 2명창’, ‘소년 명창은 있되 소년 고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고수는 세월과 인생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고수의 눈은 언제나 명창의 입을 향해 있습니다. 판소리는 악보가 따로 없기 때문에 완급 조절을 도와주는 게 고수의 역할입니다. 고수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명창의 기량에 오히려 훼방꾼이 되고 맙니다. 특히 춤 동작의 움직임을 보고 가락을 반주해야 하는데, 느낌만으로는 살풀이의 까치발을 하고 있는지 자진모리로 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저는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으로 합기도를 배웠는데, 상대방으로부터 눈을 맞는 사고로 망막박리 진단을 받았습니다. 망막은 사진기의 필름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10회 정도 수술을 받았음에도 시력이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안구 보존 차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망막박리가 더 진행돼 20대 후반에 시력을 모두 잃었습니다. 처음에는 터널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아주 작은 빛만 있으면 붙잡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저기 헤매도 빛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절망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는 눈이 보이는데, 일어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큰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비가비(조선 후기에, 학식 있는 상민으로서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을 이르던 말)’셨기에 우리음악을 가까이 하고 자랐습니다. 큰아버지께서는 ‘우리음악은 배고픈 시절이다. 통수 십년에 식은 밥 한 술 먹을 수 있는 정도니, 단지 그냥 좋아할 뿐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을 찾아 가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만류’하셨기 때문에 중·고등학생 때 용돈을 모아 몰래 우리음악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망막박리 진단을 받은 뒤 우리음악을 시작했는데, 목 상태가 좋지 않아 판소리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럴 경우 보통 고수로 전환하는데, 고수 선생님께 ‘북을 배우고 싶습니다’고 하니 ‘너는 타고난 박자 개념이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하는 데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공부한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무대에서 명창과 인생을 교감하고 희로애락을 주고받고 싶었습니다. ‘되든 안 되든 목숨 걸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조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북을 칠 때, 간을 때리고 나면 채편이 북하고 얼마정도 떨어져서 ‘활공’을 그립니다. 정확한 부위를 때려야 성음이 납니다. 비시각장애인은 그 위치를 보면서 익히지만, 저는 처음부터 반대 방향으로 배웠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늘 꿈속에서도 북을 두드리고, 누군가가 북의 가락을 가르쳐주는 것을 배우고, 움직일 때도 가락을 만들고 연구합니다.


21년 무명시절을 보내면서 무엇보다 정당한 편의시설이라든지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겪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자면, 학원을 가는 데 지하철역에서 떨어졌던 때입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은 이미 판소리 장단을 다룰 수 있는 정도가 됐고, 제 은사님이신 김청만 선생님께서도 삶의 스승처럼 대해주셨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김청만 선생님은 어릴 적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고, 우리음악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뒤 서울국립국악원에 연락해 ‘공부하고 싶다. 돈도 없고, 학비도 낼 수 없고, 악기 살 돈조차 없다’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1만5,000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가, 어떻게든 먹고 자는 것을 해결했습니다. 이후 김청만 선생님께서 악기를 주시고 가르침을 주셨는데, 마땅히 연습할 장소가 없어 어느 건물 옥상 또는 잠실에 있는 석촌호수에서 연습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여러 번 포기하기도 했지만, 무작정 ‘해보자’고 스스로를 추스렸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제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이에 보답할 것은 망막박리 진단 이후 합병증 등으로 건강이 안 좋아진 상태에서 ‘문화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40대에 무형문화재가 됐습니다.


제게 장애는 살아가는 데 불편할 뿐이지, 비장애인에게 선입견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를 통해 ‘모든 사람은 하나다’라는 인식을 퍼뜨리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는 10월 네 번째 고법발표회가 있기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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