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짜로사랑 김동남 대표

   
   

저는 짜로사랑의 김동남이라고 합니다. 짜로사랑은 사회적 기업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입니다. 현재는 연매출 5억원에 달하는 두부공장입니다.


여태까지 주위의 사람을 힘들게 했다면 이제는 인간답게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진짜로 이 세상을 멋지고 아름답게 사랑하면서 살아가자’의 준말로 짜로사랑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서 가출 생활을 하면서 17살 때부터 술을 마셨습니다. 술은 아침이나 점심이나 저녁이나 제가 마시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마실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술이 무슨 큰 문제냐’라고 생각했습니다. 알코올중독자라는 사실도 인정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가 20세 때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게 됐습니다. 20대 친구들이 군대에 가고 대학에서 공부할 나이에 저는 삼청교육대라는 곳에 부랑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1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삼청교육대를 갔다오면서 저는 세상을 더 원망하고 점점 알코올중독으로 빠졌습니다. 수전증과 환청, 환시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도원 생활을 시작 했고 기도원 생활을 하고 나와서도 알코올중독에 빠지면서 부랑인 수용시설에서 1년을 더 생활했습니다.


부랑인 수용시설에서 20대를 남들한테 손가락질 받고 부모님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그렇게 살다보니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술을 끓고 한번 가족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돼 보자’, ‘부모님한테 인정받고 가족들한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술을 끊고 열심히 살아보자’


9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가난했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검정고시도 치루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많은 실업자들이 생기고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열심히 살려고 했던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냐?’, ‘이 사회는 누구를 위한 사회냐’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살아온 9년의 시간을 되돌아 봤습니다. 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난 왜 이 만큼밖에 살지 못했나’, ‘왜 나는 아직도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술 한 잔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한편으로 9년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한 잔 쯤이야 먹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얷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원만하면서 술 한 잔 마시던 것이 다시 알콜중독자로 빠져든 계기가 됐습니다.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면서 1년 만에 가정은 파탄났습니다. 저는 옷 몇 가지만 들고 거리를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고 술이 떨어지면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또 술을 마시는 생활을 되풀이 하다 저는 하루 일도 못할 정도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보름 지나고 제 몸도 어느 정도 회복이 돼갈 때 수원희망지역자활센터 이동희 센터장님이 절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동남 씨, 당신 허우대는 멀쩡하고 술만 안 먹으면 몸도 멋있고 괜찮은 사람이 왜 술을 먹고 알코올중독이 돼서 그렇게 인생을 허비하냐. 여기 지역자활센터에 자활사업단이라는 곳이 있는데 자활사업단에 가서 일 좀 해봐라.”하는 수 없이 일을 하겠다고 한 것이 센터장님과 인연이 됐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49만 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았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물건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도 연습만 하는데도 월급을 줬기 때문입니다. 일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처음 월급으로 받고 그 돈으로 술을 사먹었습니다. 그러다 2~3개월에 한 번 꼴로 술을 먹고 쓰러졌습니다. 1년 동안 다섯 번이나 병원에 가 링거를 맞고 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다섯 번째 쓰러졌을 때 센터장님이 저에게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 더 이상 못 봐주겠다.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라고요.


저는 그 말에 오기가 생겼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술 먹고 쓰러질 수도 있는 거지 봐준 게 얼마나 있다고 이제는 못 봐주겠다고 얘기를 하느냐. 그럼 안 하면 될 거 아니냐.” 라고 말하며 공원에서 만취가 되도록 또 마셨습니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을 때 회의를 느꼈습니다. ‘내가 오죽 생활을 못 했으면 센터장도 그런 말을 했을까’, ‘이 한심한 인간아’ 라고 제 나름대로 자책을 하고 나니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에 바로 센터장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고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때가 2003년 5월 11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오늘까지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2003년도에 두부자활사업단에서 결심을 하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제품의 안정성입니다. 제가 이 두부자활사업단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성공을 하려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제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또한 신뢰감도 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직접만든 두부나 묵을 파시는 아주머니께 이것저것 물어가며 배웟습니다. 배운 것을 기계에 대입 시키면서 최고의 두부를 만들어 내는 공정법을 연구했습니다. 노하우가 생기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터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게 묻습니다. 이 과정을 겪어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가장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과거에 제가 생활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 힘든 것은 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남들한테 손가락질 받으며 길거리에서, 공원벤치에서 아무데나 쓰러져 자고 또 먹을 것이 없어서 빈병에 남아 있는 술 마시는 생활을 했던 저에게 그보다 더 힘든 일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노숙인 쉼터와 지역자활센터에 연락을 해서 일할 수 있는 분의 면접을 보게 합니다. 그 중에 한 분은 노숙인 쉼터에서 나와 꾸준히 일을 하고 계십니다. 또한 부장님, 과장님 모두 수급권자에서 탈피를 해 사회로 나가 당당하게 살고 계십니다. 작은 인원 속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짜로사랑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짜로사랑은 사회적 기업으로 저는 현재 수원시 사회적기업협의회 공동대표와 경기도 사회적기업협의회 선임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적기업협의회 대표로서 또 우리 사회적 기업들을 대변하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좋은 정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절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기쁨과 행복, 슬픔과 아픔은 항상 동반자적인 관계에서 우리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있고 조금 실의에 빠져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간다면 더 이상 인생의 참 맛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어렵고 힘들고 절망에 빠져있다고 할지라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한 가지 목표를 설정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아마 좋은 결과, 함께 나누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내세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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