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 이른바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가 지난달 한국을 덮쳤다.

메르스는 잠복기가 2일~14일가량이며 사스(SARS)와 마찬가지로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 심한 호흡기 증상을 일으킨다. 다만 사스와는 달리 급성 신부전증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스보다 치사율이 6배가량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더 치명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의 메르스 확진자는 87인, 사망자는 6인이며, 격리자는 2,400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정부의 메르스 발생 뒤 추후 대처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미흡한 초기 대응, 병원 공개마저 오류 범해

한국의 메르스 최초 확진은 지난달 4일 중동에서 귀국한 A(68) 씨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지난 4월 18일~지난달 3일까지 바레인에서 머문 뒤, 지난달 4일 카타르를 경유해 입국했다. A 씨는 일주일이 지난 11일 발열과 함께 기침 등 호흡기 증상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20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중동호흡기질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미흡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확진자에 대한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메르스는 A 씨를 비롯해 A 씨의 배우자 등을 통해 점차 확산됐다.

지난 2일이 되서야 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메르스 확산방지 강화대책 브리핑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문 장관은 “어떤 환자가 병원을 방문했다고 해서 특정 병원을 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며 “병원 이름을 공개하기보다 ‘확진환자 접촉자 조회시스템’을 마련해 추가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감염 확산을 방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감염 확산을 방지할 것이라던 복지부의 발표와 달리, 확진자는 지난 2일 30인에서 7일 87인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고수하던 ‘병원 비공개 원칙’을 깨고, 지난 7일 초기 메르스 확진 및 경유 병원 24곳을 모두 공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부 지명과 병원이름이 잘못 표기되는 등 오류를 범해 구설수에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최초 명단을 발표한지 3시간이 지나서야 수정 명단을 발표(▲성모가정의학과의원 소재지를 경기도 군포시→서울시 성동구 ▲충청남도 보령시 소재 대천삼육오연합의원→삼육오연합의원 ▲경기도 평택의 평택푸른병원→평택푸른의원, 여의도성모병원 소재지를 여의도구→영등포구 ▲부천의 메디홀스의원은 부천 괴안동 소재 병원으로 구체화)했다.

이어 8일 메르스 환진자가 87인으로 늘면서, 확진자들이 거쳐간 병원도 5곳(△서울 강동구 강동경희대학교 의대병원-응급실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응급실 △경기 평택시 새서울의원-외래 △경기수 수원시 차민내과의원-외래 △부산 사하구 임홍섭내과의원-외래)을 명단에 추가했다.

사회복지시설, 실질적인 안전지침 없어 ‘난감’

정부차원의 안전지침 및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사회복지시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메르스는 호흡기질환 등 상대적으로 건강상태가 취약한 사람에게 위험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장애인, 노인 등이 이용하는 사회복지시설 입장에서는 이번 대처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4일 지자체에 메르스 관리 수칙 등이 담겨있는 메르스 대응 지침을 배포했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최초 메르스 감염자가 확인된 지 2주 만에 배포된 것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난 4일 메르스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경기도의 한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ㄱ 씨는 메르스 관련 지침 공문을 받았지만 기본 안전수칙만 있을 뿐, 실질적인 안전치침서는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ㄱ 씨는 “휴관이라든지 운영에 관한 부분 역시 ‘시설장의 역량에 맡긴다’식이다. 결국 ‘알아서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렇게 결정하기도 저렇게 결정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독거노인 재가서비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A 복지관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A 복지관의 한 관계자는 “재가서비스는 직접 서비스 대상자 집에 방문해 안전을 점검하는 서비스인데, 메르스로 인해 서비스제공자(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의 가정방문이 일부 중단돼 서비스이용자의 위험상황 발생시 빠른대처의 어려움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B복지관은 자체적으로 프로그램 중단을 결정, 지자체와 협의해 오는 17일까지 휴관한다. 하지만 당장 생활이 어려운 서비스 대상자에 대한 밑반찬 서비스 및 긴급 사례관리는 놓을 수 없어 독자적으로 일부 시행하기로 했다.

C장애인주간보호시설의 한 관계자는 “장애가 있는 경우 기본적으로 면역력이 약해, 이번주 휴관을 결정했다. 맞벌이 하는 가정의 거주인이 있어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라며 “격리를 통해 보호하고 싶어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전했다.

이같은 이유로 휴관 없이 운영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외부활동 취소, 외부 인원·직원·이용인 손 소독이 전부다.

D자활시설은 운영을 유지하기로 했다. 한 관계자는 “노숙인 약 30여 명의 취침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손 씻기, 체온 점검 등을 수시로 실시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메르스에 감염돼 불특정 다수를 감염시키지 몰라 불안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안전지침에 질병 포함 및 예외성 둔 강제 필요… 정책은 사회약자로부터 시작해야

질병 및 재난·재해가 일어났을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지침이 없다보니, 사회복지시설의 장이 책임을 떠안는 상황이다.

한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ㄴ 씨는 “시설장의 결정은 시설장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서비스 대상자의 생활이 가장 큰 걱정이지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치료, 재활, 바우처 등 이용료 수익과 직결된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달에 하지 않으면 다음달에 반영해야 하는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은 각기 다르다.”고 전했다.

이같은 이유로 복지관 같은 경우는 ‘이웃 복지관’에게 물어 운영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또 다른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ㄷ 씨는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거나 보건복지부 산하기 때문에 공문·지침에 따라야 하지만, 공문·지침을 받아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시설장의 결정이 올바른 것인지도 보장할 수 없다. 일종의 귀책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설명했다.

ㄴ 씨는 질병 및 재난·재해가 일어났을 때 운영 중지를 강제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를 통한 감염은 확산 범위가 더욱 크기 때문에 ‘양쪽의 위험성’을 고려해, 기본적으로 운영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다만 연고지가 없거나, 가족과의 단절, 부모의 맞벌이 등과 같은 경우는 사유를 제출하고 사회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성을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ㄴ 씨는 “신속한 지침이 내려와야 하는데 이럴 때마다 행사·연수·체육대회 취소 같은 것밖에 없다. 결국 ‘우리쪽에서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 된다. 개인적으로 주무부처에 따라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고 느낀다. 교육부 같은 경우 휴관이 즉시 이뤄지는데, 보건복지부의 경우 사회복지시설이 휴관하면 사회불안을 야기시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만약 그들의 입장이 그렇다면, 최소한 협회나 단체차원의 지침이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및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들은 안전지침에 질병과 관련한 항목도 포함돼야 한다고 바라본다. 복지관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시설임에도 연 1회 이뤄지는 구청의 지도점검 항목에 ‘질병과 관련한 보건 및 위생’은 없다는 것.

한 장애계단체 관계자는 “현재 장애인 등 사회약자에 대한 안전지침 연구·개발이 이뤄졌지만, 건축물에 한정돼 있을 뿐 질병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사회약자로부터 정책을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안전의 기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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