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제 길을 걷고 가다.

 
 
유 언 장

 

안녕? 모두들. 이렇게 인사할 날이 언젠가 올 줄 알았지만, 오늘이라니. 다들 모였겠네요.

먼저, 오빠. 어릴 때부터 오빠와는 어떤 이야기든 해왔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오빠는 죽을 때까지 나한테 존댓말 쓰지말고 편하게 이야기해달라고 이야기했는데, 이제 장성한 자녀들도 있으니 존댓말 할게요. 평생 오빠가 우리 오빠여서 난 항상 자랑스러웠고, 고마웠어요. 하고 많은 사람들 중 우리 오빠가 내 오빠여서 감사했던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아요. 고마워요, 오빠.

귀여운 조카들. 너희 아빠는 내게 최고의 오라버니였어. 너희들도 서로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우애를 지닌 사이가 되길 바라. 혈흔으로 뭉쳐져 있지만, 그 유대를 만들기 위해선 서로의 이해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더라. 그간 지켜봐온 너희들이라면 충분히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해. 귀염둥이들 사랑해.

그리고 우리 새언니. 오라버니가 오빠로서는 좋은데 남편으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요? 그래도 언니랑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은 우주처럼 깊은 사람이니까 언니가 넓은 마음으로 안아주세요. 언니, 우리 가족이 돼줘서 참 고맙고 기뻐요. 남은 시간도 두 분 깨볶으면서 행복하시길 응원할게요.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많은 사람들 중 너희와 함께 부모 자식의 인연을 맺게 돼서 기쁘다. 엄마 자식으로, 아빠 자식으로, 우리의 아이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너희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겐 축복이고, 기쁨이였어. 앞으로 너희가 어떤 삶을 살든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살길 바라. 엄마는 너희가 성공하고, 부유한 삶을 사는 것보다 하루하루 있는 힘껏 행복한 사람이였으면 해. 그리고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쳐바보고 살 수 있는 신의있고, 가치있는 삶을 산다면 더없이 좋겠지. 너희들만의 길을 걸으렴. 난 그걸 보는 것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사랑해.

여보. 나 먼저 가서 미안해, 근데 난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가는 것 못 보겠어. 좀 이기적이지? 그래도 당신 있으니까 조금 안심이야. 당신 만나기 전에 나는 철저한 독신주의자였던 것 알아? 그래도 당신 만나니까 결혼해야겠단 생각이 들지 뭐야. 당신은 정말 대단해. 여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 알려주고, 또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 그 모든 게 당신이라서 가능한 일이였던 것 같아. 나 때문에 아파하는 시간은 되도록 짧았음 좋겠고, 남은 시간 우리 아이들도 다 장성했으니, 자기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들 다 하고 즐겁게 인생 더 즐기다가 천천히 와. 자기야 이제 마지막이니까 이 말 더 못할 것 같아서 할게, 사랑해.

그리고 장례식, 제 육신은 모두 태워 바람에 흩뿌려 주세요. 산이든 바다든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떠나고 싶어요. 부탁해요.

모두가 궁금해 할 증여문제. 재산 분할 이야기 할게요.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남편에게 증여하고, 동산자산은 어린이재단, 예술재단, 모교 장학재단, 국가장학재단에 나눠서 기부할거에요. 대학생 때 장학재단을 통해 학업에 도움을 받았어요. 되갚고 싶어요. 더불어 예술로 벌어먹고 살기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소규모예술재단에 기부하고 싶어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요. 나머지는 우리의 꿈이자 성장해야할 아이들을 위한 재단, 그중에서도 난치병 어린이를 위해 꿈을 이루어준다는 아름다운 가치를 비전으로 삼는 재단, MAKE A WISH재단에 기부해주세요.

이 목록에 자녀들의 몫이 없어서 섭섭해할 것 같은데, 자녀들을 위한 몫은 살아 생전 충분히 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제 다들 어엿한 성인의 자녀를 가진 큰 어른으로 성장했으니,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유산은 따로 남기지 않습니다. 이게 제 방식이니까 이해해줘요.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 강아지 밍키. 삶의 길을 함께 걸어줘서 다들 고마워요. 보고싶을거에요.

그럼, 모두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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