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박사님

출처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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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제적으로 유명하신 분 중 한명이 UN 사무총장 반기문이라면, 한국인 최초 국제기구 수장으로 뽑힌 분이 바로 故 이종욱 박사입니다. WHO 제 6대 사무총장을 임기하였으며, 백신의 황제, 행동하는 사람, 보건 모금의 달인으로 불린 분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잘 모르는 인물이어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조금 유명하지 않습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서 이종욱 박사 업적과 아시아의 슈바이처라고 불린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종욱 박사를 롤모델로 삼고 일하는 분들이 많을 정도로 삶을 열심히 사셨습니다. 1994년 WHO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으로 소아마비 유병율을 세계인구 1만명 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린 분입니다. 그리하여 ‘백신의 황제’라고 불렸습니다. 이전까지 소아마비 환자가 엄청 많았던 것에 비하면 1만명 당 1명 이하는 엄청 큰 결과였습니다. 또한, WHO 사무총장이 된 이후에도 일년 중 150일을 질병 퇴치에 앞장서서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힘쓰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리에 앉아 지시하는 고위 관직자가 아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CEO인 빌게이츠와 같은 유명 인사들로부터 질병 퇴치 기금을 기부하도록 만든 ‘보검 모금의 달인’이었습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 한 후 서울대 의대로 진학하여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대학 재학 도중 경기도 안양에 있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등 다양한 의료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한센병 환자를 간호하는 일본인 ‘가부라키 레이코’와 결혼하였으며, 36세에 남태평양의 작은 섬 사모아의 작은 병원에서 의사로 일을 했습니다. 부부가 모두 봉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봉사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WHO 남태평양 지역사무처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며 WHO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처의 한센병 자문관으로 국제기구 생활을 하였으며, 2003년 한국인 최초로 WHO 사무총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유명했던 일화는 사무총장은 국가 원수 급 예우를 받지만, 이종욱 박사는 청빈하게 살기를 바라며, ‘가난한 나라의 분담금도 있는데 그 돈으로 호강 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집 한 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를 보며 ‘아시아의 슈바이처’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이종욱 박사의 인생은 [타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환자들을 위해 일하셨던 이종욱 박사는 2006년 5월 22일 WHO 총회 준비 도중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세상에서 가장 큰 의사’를 잃었다고 전세계가 슬퍼했습니다. 현재, ‘세계 의료계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이종욱 박사는 에이즈와 조류독감 퇴치에 앞장서는 등 인체의 바이러스를 없애려고 노력했던 것이 ‘세계 보건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습니다. 대학생기자 정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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