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이전, 가족과 함께한 유럽여행에서 한국어∙한국 음식∙한국 전통 놀이를 가지고 꾸미는 ‘문화교류 체험 행사’ 구경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모여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나의 부스를 꾸미는 행사였다. 프랑스 니스라는 먼 곳에서 한국의 문화를 접했을 때의 감정은 묘한 벅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국의 대학생들이 펼치는 한국문화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예쁜 한복을 갖춰 입고 남자는 소고를 들었고 여자는 부채를 들었다. 부채춤과 한삼을 선보이는 그 몸짓이 너무 아름다워 가던 길을 멈추고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 프랑스 니스는 한창 축제 기간이었는데 각양각색의 화려한 볼거리와 각종 행렬 사이에서 한글 자∙모음으로 만들어진 거대조형물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이렇듯 외국에 나갈 때면 괜스레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들면서 우리나라의 좋은 것을 많이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글인데, 유명관광지를 여행할 때와 게스트하우스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말’을 주고받을 때 특히 그렇다. 외국에 나가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모습도 멋있지만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 말인 한글을 알려주고 한글로 대화하는 것도 상당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여행 갔을 때 언니와 둘이서 일본 역사가 깃들어진 유적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얽힌 ‘천수각’이라는 곳이었는데 이곳에서 우리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일본인이 있었다. 첫째로 너무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둘째로 일본 역사가 깃든 이곳에서조차 한국어가 나올 정도로 한글이 많이 알려졌단 사실에 새삼 뿌듯했다. 물론 가까운 이웃사촌인 일본이었기에 그랬을 수 있지만 영어, 중국어, 일본어와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한국어를 보고 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언제나 한결같이 꼭 그렇게’를 뜻하는 부사 ‘또바기’, ‘꽃이 있는 강’을 뜻하는 ‘꽃가람’, ‘유난히 귀엽게 여겨 사랑함’을 뜻하는 ‘굄’ 과 같은 말은 최근 SNS를 통해 알게 된 아름다운 순우리말이다. 이 중에는 ‘사랑옵다’와 ‘아람’처럼 단어가 너무 예뻐서 수첩에 적어놓았던 단어들도 있다. 단어의 뜻도 좋지만 단어 그 자체, 획이 그어진 그 모습 자체가 문득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늘 보고 사용하는 우리말이 이렇게 문득 가슴에 아름다움으로 내려앉을 때 나는 우리말을 사용하는 행복함에 젖곤 한다.

한글을 ‘예쁘다.’라고 표현한 것을 많이 본 적이 있는가? 한글은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아름답다’의 사전적 정의는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이다. 글자를 보고 있으며 자음과 모음에서 오는 조화로 인해 눈이 즐거워지고, 글자를 낭독하면 한글의 영롱함이 들려 저절로 행복해진다. 생김새부터 발음과 의미까지 사람들에게 이토록 행복을 주니 우리 한글을 보고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평생을 국어를 연구하고 국어운동을 위해 힘썼던 외솔 최현배 선생이 자랑스러운 이유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일찍이 깨닫고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가르치려했음에 있다. 나 역시 우리말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깊게 가짐과 동시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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