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년 오스칼과 옆집에 이사온 창백한 소녀 이엘리. 둘은 친구가 되고, 점차 서로 대체할 수 없게 된다. 오스칼은 곧 이엘리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너는 곧 나야. 너와 내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 사실 너도 그러고 싶잖아. 소외되고 소외된 사람들의(그 경우가 특수하지만) 만남과 행동이 그럴 수 밖에 없음이 처연하고 어떤 면으로는 광폭해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보통, 이라고 여기는 모든 존재들도 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어느 한 순간은 곳곳이 이들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오히려 더 낭만적이고 순수한 사랑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이엘리의 ‘사귀는 건 어떤거야?/지금이랑 다름 없어./그럼 그럴래.’,‘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 라는 말을 두고서는 더욱. 둘이 주고받는 모스부호 소리가 들릴때면 더욱. 이런 아날로그적인 게다가 어란 이들의 순간의 행복마저 빼앗고 싶지 않다. 사실 나랑 관계없는데도. 그것마저 없다면 저 밑구석에 있는 내 믿음 어딘가가 텅 비어져 버릴 것 같아서 아프고. 괴랄한 아름다움이다.

12살에 나이가 멈춰 있는 이엘리와 달리 그녀를 사랑해온 남자들은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극 중 아빠라고 불리던 그 남자도 그렇다. 그녀의 생존을 위해 원치 않은 살인을 계속하며 피를 구해온지 오래인 그는 결국 마지막 들킬 위기에 자기 얼굴에 염산을 들이붓는다. 이 결속으로부터 해방과 죄책감과, 이엘리를 향한 사랑으로. 이후 자신의 모든 피마저도 그녀에게 내어주며 생을 마감한다. 어쩌면 오스칼도 그 뒤를 밟게 되지 않을까. 살려면 없어선 안되는 것이니까. 그런 현실적인 것들을 다 내려두고, 잠시 묻어두고 그냥 나를 알아봐주고 함께해주는 상대로서 그 사이의 연결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내내 겨울이 잔뜩 담겨 있는 공기를 숨 쉬었다. 무겁고 담담하고, 서늘하다. 고요한 섬뜩함이 이런 것일까. 이 영화 속 두 사람의 분위기는 아마 잊지 못할 거다. 원작소설에는 자세한 설정이 더 있다던데, 어떤 느낌으로 나를 또 끌고 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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