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통증

 
 

 

마취가 다루는 통증은 주로 수술에 따르는 극심하지만 지속시간이 짧은 급성 통증이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생활방식이 변화하면서 통증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명확한 신체적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진통제 등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만성통증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급성통증은 괴로움의 정도를 헤아리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만성통증은 효과가 그다지 강렬하지 않고 객관적지표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이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합리성을 추구하는 현대의학은 만성 통증에 비교적 무능했다. 이전의 마취과를 마취통증의학과로 개명한 2002년의 개정 의료법은 이런 만성통증에 대한 대중과 의료계의 관점이 달라진 결과이다. 이제 의학은 일상 속에서 흔히 발생하는 만성 통증을 마취가 아닌 일상 속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수시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편두통 환자를 그때마다 전신마취로 치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급성통증은 의식이나 신경전달을 차단해 마취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만성의 경우는 발생과정이 훨씬 더 복잡하다. 따라서 단순한 해결책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 급성통증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은 주로 신경전달을 차단하는 것이다, 전신마취는 뇌의 각 부위간의 소통을 막아 무의식과 무통상태에 이르게 한다. 국서마취는 통증을 발생시키는 말초신경의 신호 전달을 막는다.

‘동의보감’에서는 ‘서로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고 했다. 한의학의 핵심개념인 경락을 염두에 둔 말이겠으나 만성통증을 일으키는 신경망과 사회생황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급성만성을 해결한 마취학의 영웅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렸던 것도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려고만 했지 서로 통하지 않았던 때문 아닐까. 우리는 급성통증을 성공적으로 정복했다. 하지만 만성통증은 정복이 아닌 적응의 문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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