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성역의궤] 중의 <화성전도> (출처 네이버)
▲ [화성성역의궤] 중의 <화성전도> (출처 네이버)

역사 수행평가를 하며 조선 시대 22대 왕 정조에 대해 궁금하여 조사를 했다.

정조는 21대 왕 영조의 아들이 아니다. 손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정조의 친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채 사망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1775년 대리청정을 하다가 다음 해 영조가 사망하자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할아버지가 했던 탕평책을 실시했다. 청류를 조정의 중심부로 끌어들였으며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남인 세력을 등용하였다. 또한 규장각을 설치해서 문화 정치를 실시했다. 청나라의 건륭문화에 관심을 갖고 서적을 수입하기도 하였다.

정조하면 떠오르는 화성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처음에 화성은 부친 사도세자의 무덤 이장을 계기로 조성된 성곽이었다. 하지만 정조는 화성을 단순히 군사적 기능을 수행한 성곽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곳을 무대로 자신이 개혁을 통해서 얻어진 결과를 시험하는 곳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래서 당시로써는 가장 선진적인 축성 기술을 도입하였고 , 정약용 등의 측근세력을 투입하여 주도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런 개혁은 정조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1800년 6월 49세의 나이로 사망한 정조대왕은 대한제국이 수립된 이후 황제로 추존되어 선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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