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로기구, 바다 이름 대신 숫자코드표기 제안

 
 

 ‘동해’ 지명 표기 관련 안건을 다루는 국제 세미나가 지난 17일에서 19일, 사흘에 걸쳐 강릉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국제 세미나에서는 점점 확산되는 구글맵 등 디지털 지도에 동해 병기를 확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한국 정부는 1992년부터 국제적으로 일본해(Sea of Japan)로 되어 있는 동해 표기를 동해(East Sea)/일본해(Sea of Japan)로 병기하기 위한 노력을 펼쳐오고 있다. 동해 병기 캠페인은 1992년 8월 제 6차 회의를 시작으로 유엔 무대에서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국제수로기구를 통해서도 관련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1929년, 국제수로기구는 해도제작 지침서인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을 발간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던 시기에 제작된 이 지도는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고 있었고, 이 내용은 이후 2판(1937년), 3판(1953년)으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동해 병기 운동은 S-23의 4판 발행 때 ‘일본해’의 명칭을 반드시 ‘동해/일본해’로 병기하게끔 만드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일각에서는 동해 단독 표기가 아닌 동해/일본해 병기를 주장하는 것이 독도의 소유권에 대한 일본의 주장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비판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후에 계속된 병기 제안에 대한 일본의 단호한 입장을 고려했을 때 병기가 단독표기에 비해 현실적인 방안이 아닐까 싶다. 또한 동해 수역이 한반도와 일본 수역의 경계를 포함하고 있는 점을 비추어, 동해/일본해 병기가 양국 모두의 입장을 반영한 가장 알맞은 선택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한-일 양국 정부는 2000년대 중반 세 차례 직접 협상을 시도했지만 일본은 한국의 병기 주장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 외무성의 공식 홍보자료인 <일본해-국제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온 유일한 명칭>을 보면, “일본해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호칭이며 분쟁의 소지가 될 여지는 없다. 국제회의의 장에서 한국이 이같은 주장을 할 경우 일본은 단호히 반대할 것”이라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일 간의 치열한 대립이 장기화되니 결국 국제수로기구는 2002년 완성한 4차 개정판의 최종 초안에 동해 부분을 백지로 남겨두었다. 이후 국제수로기구는 2017년 4월 총회에서 동해 표기와 관련해 남, 북, 일 3자가 따로 모여 비공식 협의를 통해 결론을 내리라고 의결했고, 이에 따라 2019년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3자 대화가 이루어졌지만 일본은 끝까지 한국의 병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최근 국제수로기구가 각 수역에 바다 이름 대신 숫자로 된 코드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바다 이름을 숫자로 바꿈으로써 갈등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는 외교 갈등의 창의적 해결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본의 여론은 만만치 않다. 일본의 누리꾼들은 정부가 타협안을 막지 못했다며 이를 정부의 ‘외교 실패’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안건은 애초 4월에서 11월로 연기된 국제수로기구 총회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동해 연구회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지명을 과연 숫자로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S-23에 동해를 싣고자 노력해 온 한국 정부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30년 가까운 한국 사회의 노력으로 세계 종이 지도에 나타난 동해/일본해 병기 비율은 40%정도이다. 그러나 최근 병기 운동은 지도의 디지털화에 적응하는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지도는 단연 ‘구글맵’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영어로 구글맵에 접속하면 동해 수역이 일본해로 단독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 쪽으로 지역을 좁혀 세 번 축척을 늘여가야 비로소 동해/일본해 병기가 등장한다. 이에 따라 구글 지도, 미국, 유엔을 3대 교섭 대상으로 삼아 병기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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