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자리

Ⅰ서론

ⅰ감상의 시작

평소에 잔잔한 영화를 좋아해서 이번에도 여느 때와 같이 잔잔한 영화를 찾던 중 <파도가 지나간 자리>라는 제목의 영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걸까? 여러 개의 포스터 속 내가 보았던 포스터는 아빠 어깨 위에서, 아빠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귀여운 소녀와 그런 딸을 꼭 안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설명란에는 “하늘의 선물일까?”, “미래의 불행일까?”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설명란의 글을 보자 더 내용이 궁금해져서 영화를 바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ⅱ사회적 배경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4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다.

 

ⅲ줄거리 요약

1차 세계대전 용사로 4년간 전쟁에 참여했던 주인공 톰 셔본은 험난했던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외딴 섬에 등대 지킴이 일을 하러 가게 되었다. 여기서 톰은 여주인공 이사벨 그레이스마크를 만났고 둘은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 야누스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둘에게 사랑스런 아이가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이를 유산했고, 두 번째 아이도 만삭이 될 때까지 품었지만 결국 첫째와 자리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이사벨은 두 번이나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로 간신히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누스로 작은 배가 하나 밀려왔고 그 안에는 이미 생명을 다한 성인 남자와 간난 아기가 함께 타고 있었다. 이사벨은 제일 먼저 아이를 구했고 야누스에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 해야 했기에 톰은 담당자로서 기록을 하러 가려던 참이었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아이에 대한 갈망이 심했던 이사벨은 작은 배로 떠밀려 온 아이를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톰에게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을 것을 부탁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알고 있기에 톰은 갈등했었지만, 결국엔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톰도 아이를 원했지만, 옳은 일이 아니었기에 항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지냈었다. 며칠 후, 아이를 가졌다는 두 사람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축하해주었고 아이의 세례식이 있던 날 톰과 이사벨은 지역 대부호의 딸인 한나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한나는 톰과 이사벨이 작은 배에서 만난 아이, 루시 그레이스의 친엄마였다. 한나의 정체를 알게 된 후로 톰은 더 강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영원히 비밀로 하자던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루시 그레이스의 장난감과 아이가 살아있다는 편지를 차례로 보냈다. 한나는 자신의 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결국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아이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도 컸던 이사벨은 톰이 사실을 밝힌 것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이사벨이었지만 이사벨에 대한 마음이 컸던 톰은 자신이 혼자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겠다고 했다. 재판을 받기 직전 이사벨은 톰의 마지막 편지로 마음을 확인하고 사실을 밝혔다. 한편, 루시 그레이스도 하루아침에 바뀐 엄마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온종일 이사벨을 찾다가 지쳐 잠들기 일쑤였다. 한나에게도 독일인과의 결혼이라며 아버지의 엄청난 반대와 많은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지내다 찾아온 아이였기에 사랑했던 남편만큼이나 소중했던 존재여서 쉽게 톰과 이사벨을 용서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이 더 괴로웠고 생전에 남편이 “용서는 한 번이면 돼”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 톰과 이사벨을 선처해주기로 했다. 선처받고 금방 사회로 나오게 되었지만, 이사벨은 그 이후로 루시 그레이스를 만나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톰도 루시 그레이스가 커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만나지 못한 채로 지내야만 했다. 루시 그레이스와 톰의 오랜만에 재회를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Ⅱ본론

ⅰ전쟁의 아픔, 그리고 감사함

둘이 나들이 가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무엇을 원하냐는 이사벨의 말에 톰은 “삶”이라고 말했다. 이에서 얼마나 전쟁터에서 정신적으로 힘들게 보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톰이 자신은 “전쟁터에서 너무 죽음에 둘러싸여 있어서 감각이 무뎌져서 야누스에 온 것 같다”라며 “이곳에선 아무도 해칠 수 없고 등대만 책임지면 되니까 세상에 대한 미련이 모두 사라진다”라고 했다. 이에서 전쟁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아팠던 시절이 있었고 오래전 톰과 같은 감정을 가졌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그 상황 자체에서 오는 타격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이런 감정을 가지며 그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조차 감사했다.

 

ⅱ용서

“용서는 한 번만 하면 되니까. 누굴 증오하려면 온종일, 매일 평생 나쁜 생각들을 계속 떠올려야 해. 그게 더 힘들지” 한나 남편의 대사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 명대사이다.

처음에는 단지 한나가 이사벨과 톰을 용서하는 장면에만 해당하는 대사라고 생각했으나, 한나의 남편이 세상 사람들을, 한나 아버지가 한나와 한나 남편을, 한나가 이사벨과 톰을, 이사벨이 톰을, 루시 그레이스가 한나를. 자신의 상처를 각자의 방식으로 ‘용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용서’였던 것 같다. 누군가로 인해 오랜 기간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을 겪었을 때는 억울하고 눈물이 나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만 했던 나도 이 영화를 통해 ‘용서’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ⅲ서로의 상황과 심정

한나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버지와의 사이도 나빠질 정도로 독일인과의 결혼으로 인해 한나는 사람들의 불편한 눈초리를 받아야 했고, 모르는 사람에게 손가락질과 미움을 받아야 했었다. 한나는 힘들었지만, 사랑하는 남편과 둘 사이의 소중한 아기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소중했던 사람을 두 명 동시에 잃게 된 것은 한나 입장에선 삶의 이유가 사라진 것과도 같았을지도 모른다. 영화이기에 주인공을 상황을 설명하고 주인공 위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시청자였던 나는 처음 영화를 볼 때 이사벨과 톰이 조금이라도 형량을 덜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한나였다면 너무 어이없고 억울했을 것 같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이를 빼앗겨서 몇 년간 아이를 보지 못했는데 돌아왔을 땐 아이도 자신을 원하지 않고 원망만 하니 기댈 곳도 없었던 한나는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도 자신이 딸에게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아이를 다시 이사벨에게로 보내겠다고 마음 먹은 한나를 보면 ‘엄마’라는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벨과 톰 부부

두 번의 유산으로 배 속에 있던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이사벨, 아이를 너무나도 많이 원했었기에 제정신으로 하루를 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사벨은 작은 배에서 루시 그레이스를 본 순간 아이의 친엄마와 아이의 본 가정을 위한 이성적인 생각보다는 아기가 너무 고파 그냥 “아기만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면”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4년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전쟁터에서 지내던 톰에게 이사벨은 어두웠던 그와는 달리 아주 밝은 사람이었다. 춥고 어둡고 외로웠던 순간 그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던 그녀였기에 이사벨에 대한 톰의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정말로 그녀를 위해서였다면 그녀를 올바른 길로 안내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잠시라도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소중했었나 보다. 이사벨과 톰이 한 행동은 어찌 보면 유괴, 감금 등 심각한 사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이사벨과 톰이 얼마나 어리석고 어린 부부였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였지만, 그런 이사벨과 톰도 루시 그레이스에게는 둘도 없을 소중한 부모였다. 이사벨과 톰이 원해서 키우게 된 아이여서 자신의 배에서 낳은 것이 아닌데도 아이에게 그만큼의 사랑과 애정을 쏟아붓기는 어려운 일인데 아이에게 준 사랑만큼은 현대 시대 부모들이 보고 배워도 될 정도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Ⅲ결론

파도가 지나간 자리라는 의미는 아마 이 영화에 나오는 배역들의 마음을 휩쓸고 간 누군가의 빈자리 혹은 과거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그 자리는 다시는 맑은 물로 채워지고 아름다운 파도가 칠 수 없는 자리가 되었다. 만약 바닷물로 채워졌다 한들 상처가 난 자리에 바닷물은 따끔거리고 아픈 존재일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채워질 수 없는 따끔거리는 존재를 각자의 방식으로 ‘용서’하였던 게 아니었을까?

(사진 출처: 파도가 지나간 자리, 용서는 한번만 하면 되니..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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