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플라톤의 ‘향연’이라는 도서를 요약하여 설명하고, 필자의 생각을 적어보겠다. 향연이란 무엇일까? 맛의 향연, 꽃들의 향연 등 일상에서 간간히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향연’이란 보통 잔치를 의미하지만, 이 책의 맥락과는 좀 다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향연이란 단순한잔치보다는 고대그리스에서 술잔을 돌리며, 단편적인 시들을 낭송하고, 노래를 부르고, 농담도 하고,판토마임을 하기도 하는 연회행사를 의미한다. 즉, 예전에 TV, 스마트폰 등의 실시간 소통 및 의견 교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일한 소통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향연’이었던 것이다.이 책은 그럼 어떤 주제를 다루는 것일까. 바로 사랑이다.

 

이 책은 ‘에로스’라는 주제로 여러 사람이 토론하는 것이 배경이 된다. 여러 담론가들이 각각 에로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리스데토모스가 화자가 되어,이야기의 서두를 시작한다. 그 이후, 식사를 하고, 의례적 절차를 하면서 향연이 시작된다. 첫연설자인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사랑에 필요한 용기와 힘을 발휘하게 해준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연설하였고, 에로스를 찬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는 에로스가 가장 오래된 신이며, 최대선의 원인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하며, 아킬레우스, 오르페우스, 알케스티스 등의 일화를 예로 들었다. 다음으로, 파우사니아스는 에로스에 대한 무조건적 찬양은 문제가 있다고 연설한다. 그는 에로스가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마치, 지킬과 하이드처럼 말이다. 그는 ‘천상의(우라니아)에로스’와 ‘범속의(판데모스)에로스’가 존재하고, 이 중 천상의 에로스를 추구하며 찬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의 근원을 분리하여 설명한다. 다음으로, 에뤽시마코스는 에로스의 이분화는 인정하지만, 에로스의 적용 영역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는 인간 뿐만 아니라 사물,기술,추상적인 개념들에도 에로스가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그 예시로 계절, 건강과 질병등을 들었다. 다음으로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의 본성인 ‘안드로구노스’가 남-여 조합으로 쪼개지고,서로 추구하며,남은 반쪽을 찾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이야기하였다. 따라서, 에로스를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추구하는 것을 일컬어 말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아가톤은 에로스가 가장 아름답고(가장 젊고,형태가 유연하다),훌륭하기(쾌락을 이겨내고,용기있다)때문에 가장 행복한 존재라고 주장한다.마지막으로,소크라테스가 연설한다.

 

소크라테스는 에로스를 새롭게 정의한다. 에로스는 ‘중간자’이고,완전한 좋음이나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하였다.즉,에로스는 아름다움과 추함 그 사이, 좋음과 나쁨사이에 있다는 점을 그가 가난(페니아)과 부의 신(포루스)가 만나 생긴 아이임을 근거로 들어 설명한다. 그렇지만, 그는 에로스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즉, 행복이나 아름다움이 에로스는 아니지만,에로스는 이들을 추구하는 결핍의 상태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에로스의 기능을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설명할까. 그는 에로스가 서로의 몸에 매력을 느끼는 단계, 사랑을 나누게 되는 단계를 거쳐,마지막으로 출산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을 에로스라고 표현한다. 그는 출산을 아름다운 것 안에서 가사적이며,불사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출산은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좋은 가치를 추구해내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사랑에 애타고,번식에 목숨을 걸어가는 이유가 에로스,더 나아가 출산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있는데, 이 목표는 ‘불사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유래된 정신적 가치라는 것이다. 아무리,불사를 열망한다고 해도, 실제로 신체적, 정신적 가치(앎)마저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기에, 정신적 앎의 생성을 그렇게까지 열망한다고 설명한다.필자도 이러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신체적 즐거움(유흥,순간적 쾌락)보다 정신적 즐거움(행복,장기적 목표 달성으로 부터의 쾌감)등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삶을 살고 있고, 실제로 그런 삶들이 더 권장되는 사회라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더 동의할 수 있었다. 결국은 사랑도 그런 정신적 즐거움이 최고 도달점이고, 최종 목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추한 것에서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지도 않겠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와중에도 단계가 존재하고, 이 단계들을 밟아가면서, 좋은 영혼과 함께정신적 가치들을 창출해 나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경험들로만 쌓아왔던 사랑에 대한 조그마한 지식들에서 나아가 여러 현자들의 신화 등에서 예시를 찾아가며 주장하는 견해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대한 필자의 관념에 도움될 만한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가? 나는 왜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가?등의 질문에 이제는 조금 덜 추상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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