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출신 여성이주민 온드라 씨와 그의 자녀 호진·가은어린이 인터뷰

 
 
“나야 어차피 살아온 배경도, 언어도, 얼굴도 다르니까 이방인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왜 우리 아이들한테까지 그 차별이 되풀이 돼야 하죠?”

몽골 출신 여성이주민 온드라(41) 씨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속내를 내비쳤다. 2001년 지인의 소개로 평범한 회사원인 이주용(42) 씨와 결혼해 아들 호진(11)과 딸 가은(9)을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는 딱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다문화 가정의 자녀로서 두 아이가 겪어야만 하는 ‘차별’이라는 인식이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 제낀 온드라 씨의 등 뒤에서는 호진 어린이와 가은 어린이가 깔깔깔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는 커다란 목소리와 겉모습만 봐서는 단박에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실제로도 외모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다르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온드라 씨는 왜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인식에 대해 고민하게 된걸까?

‘배려’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또 다른 차별’

“어느 날, 딸 아이가 학교에서 통지서를 받아왔더라구요. 내게 건네면서 하는 말이 ‘엄마, 나 앞으론 이런 거 받기 싫어’라고 하더라구요. 왜 싫으냐고 물어보니까 친구들이 뒤에서 수근거렸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내 자리로 다가오면 ‘이번엔 또 뭘까?’ 생각해요. ‘왜 나만 이렇게 주지?’ 의아한 마음이 들어요. 나에게만 특별히 주는 거지만, 앞으론 이런 거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가은 어린이가 내민 통지서에는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한국어·일본어 교육 등 다문화 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었다. 이를 두고 온드라 씨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또 다른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다문화 가정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진행되는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구경거리’가 되거나 ‘시혜적 시선’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온드라 씨는 “현재 지원 프로그램은 ‘보여주기식’ 지원에만 치중하면서 정작 이들을 차별하고 소외시킬 수 있는 다수자의 인식과 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문화 간의 소통 교육은 당사자 뿐 아니라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어린이들은 문화적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다른 사람을 배척하거나 거부하지 않지만, 선생님이 먼저 다문화 어린이를 ‘다르다’고 인식하고 특별 대우를 하는 순간 어린이들 또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모든 학생들 뿐만 아니라 차별의식을 불식시키는 어른들의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한다고 바라봤다.

 
 

한국인도 몽골인도 아닌 ‘다문화’

하지만 이것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2009년 온드라 씨 가족이 몽골에서 1년여 남짓 동안 머무는 동안에도 역시 ‘다문화’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겪어야 했다.

“아이들이 몽골인 엄마 아빠의 자녀들과 어울리며 문화도 배우고, 몽골어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교회에 다녔어요. 그런데 거기서 한 몽골 아이가 ‘너네 아빠가 한국사람이니까 너랑 안 놀아’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때 알았어요,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서도, 몽골에서도 모두 낯선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당시 반 년 동안 몽골유치원에 다녔던 호진 어린이는 몽골어를 할 줄 몰라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 두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다 익히길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 결국 온드라 씨는 ‘이렇게 욕심부리다가는 아이들이 진짜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한 군데로 정착시켜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이 ‘한국인답게 살아가기’다. 지금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 하지만, 그때만해도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던 온드라 씨는 한글로 쓰여진 동화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함께 한국어 공부를 했다. 한국의 우화·역사·위인 등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덩달아 문화도 익혔다.

결국 여느 한국인 못지 않게 한국어에 능숙하진 온드라 씨는 현재 다문화 콜센터에서 한국인과 몽골인을 이어주는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알게 된 다른 여성이주민들은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이중언어교육’을 시킨다고 했지만, 온드라 씨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다문화가정 자녀의 이중언어 사용은 글로벌 리더의 첫걸음이다’ 뭐 이런 말을 하는데, 저는 무엇보다 정서적 안정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원하면 가르치겠지만 ‘나중에 다 너희한테 이득이 된다’며 제 욕심만 부려 시킬 순 없는 거잖아요.”

혹여나 아이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진 않을까 우려돼 현재는 오로지 한국어로만 소통하고 있다는 온드라 씨 가족. 소통하는 데 있어서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온드라 씨는 여전히 ‘지금의 교육 방향이 올바른 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어린이 73.4% ‘나는 한국사람’

온드라 씨의 자녀 호진·가은 어린이는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소개했다. 부모님의 나라가 달라서 혼란스러웠던 적이 없었냐는 질문에 호진 어린이는 ‘전혀 없었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나는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니, 당연히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엄마도 한국에서 13년이나 살아서 한국에 대해 아주 잘 아세요. 그래서 저는 혼란스럽지 않아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지난 2011년 8월~10월까지 전국 16개 시·도의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다문화가정 어린이 총 1,502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다문화가족 아동·청소년의 발달과정 추적을 위한 종단결과 Ⅱ’에 따르면,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지에 대한 질문에 전체의 73.4%가 호진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비해 자신이 ‘외국출신 부모의 나라사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에 불과했으며, ‘한국사람이기도 하고 외국출신 부모의 나라사람이기도 하다’는 이중 정체성을 지닌 비율은 21.5%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가정 어린이’라고 구분 짓는 것과 달리 스스로는 대부분 ‘한국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

온드라 씨는 나중에 아이들이 완전히 정체성이 확립되고 난 뒤 몽골의 문화가 궁금하다고 하면 알려줄 요량이라고 밝혔다.

“학교 내에서 다함께 교육받을 순 없을까?”

 
 
아울러 그가 놓치고 가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학부모 모임이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방문 교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자녀를 기르면서 여전히 따라가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것은 바로 한국의 교육 문화다. 이주 전의 나라에서 받아 온 교육과 한국의 교육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은 자녀 교육을 굉장히 일찍부터 시키더라구요. 그걸 몰라서 교육을 안 시키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얼마나 핀잔을 들었는 지 몰라요.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건, 학교생활에 있어서 엄마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는 거예요. 몽골에서 엄마가 학교에 찾아가는 건 자녀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뿐이었거든요.”

어릴 적부터 독립적으로 생활해왔던 온드라 씨에게 여느 한국 학부모들의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학부모들끼리 만나 자녀의 교육 문제에 있어 의논하는가 하면, 부모의 역량이 곧 자녀의 교우 관계에 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유난히 드러나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로인해 ‘아이에게 무관심한 엄마’라는 질타까지 받은 그에겐 큰 우려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이같은 걱정을 하고 있을 무렵, 콜센터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프로그램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다문화가족 방문교사다. 이들은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직접 가정을 방문해 자녀의 생활을 지도하고,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원활한 학교 생활을 위한 상담 등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에는 호진 어린이가, 올해는 가은 어린이가 주 2회 씩 교육을 받았다. 방문교사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 두 아이에게 수학이나 국어 등 주요 과목에 대한 지도를 진행하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만들기 프로그램도 실시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두 아이의 생각은 어떨까?

“선생님도 친절하시고 참 좋은데요, 사실 우리는 다문화라는 틀에 갇혀 있는 교육이 아닌 예술이나 운동 등에 대해서도 배워보고 싶어요.”

늘 배우는 ‘다문화에 대한 이해’ 보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길 바라는 두 아이. 사실 우려로 방문교육을 신청했지만 온드라 씨의 마음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센터의 지원에 감사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다문화’를 따로 구별해서 교육시키는 사회적 제도에 불만을 표했다.

“센터에서 나와서 굳이 ‘다문화’라고 구별시켜 공부시키는 것보다는 학교 안에서 동등하게 교육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처럼 계속해서 한국 아이들와 다문화 아이들을 따로 두고 생각한다면, 사회통합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건 오히려 인식 차별을 조장하는 일이잖아요.”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산 부모를 뒀다는 이유 하나로 한국인이 아닌 ‘다문화’로 분류되는 아이들. 물론 이주민의 완전한 정착을 위한 정책과 제도는 필요하지만, 정책의 방향과 목표는 ‘다문화’가 아닌 ‘한국인’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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