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주영 열사 1주기 추모제… “남은 이들이 이뤄내야 할 과제”

 
 
“주영 언니는 ‘민정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니? 활동보조인이 가고 난 뒤 다음날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 침대 위에 누워있어야 한다는 거야.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무도 모를 거야’라고 말했다……. 언니가 죽고서야 세상은 떠들썩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던 사람들은 그제야 언니의 영정사진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활동지원 24시간 쟁취를 위해 앞으로도 투쟁해야 한다. 그래야 언니가 흘렸던 통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민정 소장의 ‘주영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2012년 10월 26일 오전 2시 10분경,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의 한 주택 건물 1층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그곳에 살고 있는 故 김주영 열사는 연기에 질식해 숨을 거두고 말았다.

故 김주영 열사는 중증장애인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그가 받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은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시간을 모두 합해도 월 363시간에 불과했다.

 
 
이는 하루 1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양으로,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힘든 중증장애인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생존권 보장 정책이었다. 게다가 본인부담금까지 있어 이마저도 쓰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故 김주영 열사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는 그의 활동보조인이 돌아간 지 3시간 만에 일어났다. 그에게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이 이뤄졌다면, 그는 아직도 투쟁 현장에서 故 김주영 열사가 아닌 ‘김주영 활동가’로 남았을 것이다.

더구나 故 김주영 열사는 119에 구조를 요청한 뒤 원격조종기를 이용해 문을 열고 빠져나오려고 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가 숨을 거둔지 1년째인 지난 26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들장애인야간학교, 장애해방열사 단은 ‘김주영 열사 1주기 추모제’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었다.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는 “주영이는 ‘열사’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가깝게 느낀다. 지금도 중증장애인으로부터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데 장애등급이 떨어져 받지 못한다’는 전화가 계속 온다. 손가락 몇 번, 발가락 몇 번 움직인다는 이유로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주영이의 추모제 2·3주기 때 ‘조금 더 나아갔다’, 5주기 때 ‘주영아, 우리 이만큼 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당당한 삶을 쟁취할 때까지 주영이의 넋은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김명운 의장은 “정부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등급으로 나눈다. 정부가 우리를 상품으로 대하고, 등급으로 나눌 때마다 정말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통탄했다.

김 의장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서비스가 늘어나도 우리의 바람은 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어떻게 투쟁해야하는지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노동가수 이혜규는 추모공연에 앞서 “정부가 4대강에 수십조 원을 쏟지 않았다면,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주지 않았다면, 동지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 이형숙 공동집행위원장은 “우리의 피가 얼마나 붉게 물들어야 권리를 쟁취할 수 있을지 사뭇 걱정되지만, 하루빨리 쟁취했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지들의 아픈 곳도 많아진다. 세상을 바꾸고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고 힘을 실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은 故 김주영 열사가 살아있는 동안 연출한 영상 ‘외출 혹은 탈출’을 떠올리며, 아직도 나아지지 않은 장애인의 현실을 규탄했다.

양영희 회장은 “제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통해 ‘외출 혹은 탈출’을 봤다. 중증장애인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이 마치 달성 과제인 것처럼 되는 사회 안에서 투쟁하고 저항하는 주영이의 모습이 생각난다.”고 떠올렸다.

양 회장은 “추모제에서 검은색 옷을 입어야하나 고민했다. 문득 주영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영이와 이야기는 많이 못 나눠봤지만, 주영이는 항상 밝고 주위에 웃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활동지원 24시간을 쟁취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자.”고 외쳤다.

이날 추모제에는 故 김주영 열사의 어머니가 참석했다. 故 김주영 열사의 어머니는 “여러분이 여기 나오시기 위해 너무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셨을 것을 잘 안다. 고생 많으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故 김주영 열사에 대해 “내가 주영이에게 ‘엄마에게 소원이 있다면 너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것’이라고 말하면, 주영이는 언제나 ‘그런 소리 하지 마. 활동지원도 있고 내가 알아서 살 거야’라고 했다. 주영이는 내게 ‘든든한 어깨’였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故 김주영 열사의 어머니는 “주영이는 언제나 (부족한 활동지원으로)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될까봐 먹고 싶은 것도 참고 다녔다. 그 사실을 알기에 부모로서 화장실을 갈 때도 편하게 가본 적이 없다.”며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을 꼭 이뤄서, 못 다 이룬 주영이의 꿈을 이뤄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박경석 회장은 “우리는 주영이의 영정사진을 들고 보건복지부까지 행진했고, 그 결과 월 180시간을 뚫고 540시간을 이뤄냈다. 이는 주영이가 이뤄낸 것.”이라며 “활동지원 24시간, 여기에 있는 동지들의 투쟁으로 쟁취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제대로 주영이를 보내려면 활동지원 24시간 쟁취하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 동지들이여, 그때 울자. 사람을 죽이는 권력에 복수하고, 모두가 사람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투쟁하지 않으면 또 누군가 불타 죽고 얼어 죽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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