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2일, 수많은 국민들이 숨죽여 피겨퀸의 마지막 스케이팅을 감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은메달에 그쳤다. 보통 선수라면 '은메달을 땄다'라고 말했겠지만 그녀는 피겨퀸 김연아인데다가 올클린으로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소치에서만 열리지 않았더라도 하는 분한 마음이 몇날며칠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세계가 김연아의 은메달 소식에 시끄러운데도 유난히 입을 닫고 있는 한 곳 또한 원망스럽기가 그지없다. 

분한 마음을 잠시 가라 앉히고 생각해 보니, 4년 뒤 올림픽은 우리나라 평창에서 열린다. ‘이번에 당한 걸 제대로 복수해 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평창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한의 정서'를 표현하지 않으면 점수는 없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과연 4년 뒤 우리가 맘껏 위세를 떨친다고 해서 이 분한마음이 다 풀릴까?’란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려웠다.

1988년 '88올림픽'이 열리던 때로 가 보자.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했고, 홈 어드벤티지를 맘 껏 누렸다. 최종 성적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종합 4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금방이라도 세계 4강국, 적어도 스포츠에 있어서 만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들떠 있었다.

당시 한국이 누린 특혜는 대단했다. 일부 종목의 경우 아직까지도 대표적 오심 사례로 지목될 만큼 심한 것들도 있었다. 축제의 환호 속에 묻혀버리기는 했지만 지금 러시아 못지 않게 부끄러운 메달들이 분명 포함 돼 있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한국 스포츠의 초라한 외교력과 선수층, 그리고 지원은 금새 바닥을 드러냈다. 서울 올림픽 당시 따놓은 메달이라고 불렸던 몇몇 종목은 이제 금메달은 커녕 메달 구경하기도 어려운 종목으로 전락했다.

4년 뒤 평창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분명 우리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회에서 메달 몇개를 더한다 해서 한국 스포츠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얼마 전 읽은 한 기사에서 '스포츠 외교력을 키우려면 단순히 돈과 명예가 있는 인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수 있는 진정한 인격을 지닌 인물이 IOC 등 국제 단체에 전면에 나서야 한다. 또 몇몇 특출난 선수들에게만 몰리는 지원도 전폭적이고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글을 보았는데 나는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한 풀이는 복수와 다르다. 당한 걸 갚아주는 건 1차원적 대응일 뿐이다. 피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다시 핏빛 복수만이 돌아온다. 이제라도 진정으로 진짜 문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기사에서 보았던 고 박경리 선생의 인용구를 덧붙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한(恨)을 한때는 퇴영적인 국민정서라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해석을 잘못한 거예요. 일본은 한을 ‘우라미’라고 하는데 우라미는 원망이에요. 원망이 뭐냐, 복수로 가는 거예요. 일본의 원망이나 복수가 일본 예술 전반에 피비린내로써 나타나는 겁니다.그게 어디로 가냐면 일본의 군국주의로 가요. 우리의 한(恨)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내가 너무 없는 것이 한이 되어서…말하자면, 내가 뼈가 빠지게 일해서 땅을 샀다. 내가 무식한 것이,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것이 너무나 한이 되어서 내 자식은 공부시켰다. ‘미래지향’이거든요. 소망이거든요. 이게 절대로 퇴영적인, 부정적인 정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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