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엄마, ‘성적 욕구’가 생기는 내가 나쁜건가요?”

얼마 전, 정준이(가명, 15, 자폐성장애 1급)학생의 어머니 A씨는 화들짝 놀라는 경험을 했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들 준이가 바닥에 성기를 문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나도 모르게 누워있는 아들을 발로 차며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화를 냈다. ‘얘는 다른 기능들도 안되고, 인지능력도 비장애인에 못 미치는데 어째서 성적 욕구만 나이에 맞게 성장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당시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토로했다.

지적·자폐성장애어린이 부모, 성적호기심 무시·회피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의 몸이 성장하고 또 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모의 고민은 시작된다. ‘아무것도 모를텐데 뭐’ 또는 ‘무슨 성욕이 있겠어’라는 편견을 갖고 무성(無性)의 존재로 기르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의 성적 행동을 발견하게 됐을 때, 당황한 부모는 무조건 ‘안된다’라는 말로 성적 행동을 억제시키곤 한다. 더불어 ‘성 지식을 알려주면 성적 호기심이 더 커지진 않을까’, ‘앞으로 성경험의 기회도 많지 않을텐데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하는 우려 때문에 성교육의 기회조차 원천 차단하기도 한다.

한국발달장애가족연구소 김혜경 강사에 따르면 어떤 어머니는 스무살이 넘은 지적장애인 아들의 자위 행위를 막기 위해 아예 방 문을 떼어 버리고,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집 안에 거의 노출시켜 놓는 경우도 있다.

A씨는 성에 눈을 뜬 아들을 바라보며 “성욕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적 욕구로 인해 통제력이 없는 아이가 사회에서 비난받는 행동을 하게 되진 않을지 우려됐다.”고 털어놓았다.

지적·자폐성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성에 대한 흥미가 있으며, 신체적인 성 기능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하지만 ‘성적 충동을 억제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무절제하게 성욕을 발휘하고, 성폭력를 저지를 수 있다’는 비장애인들의 막연한 추측들 때문에 성적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무조건 억압하고, 모르게 한다고 해서 ‘성적 욕구’가 사그라들까? 그렇지 않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지적·자폐성장애인들은 표현하는 방법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성기 노출, 가슴 만지기, 공공장소에서 옷 벗기, 무분별한 신체 접촉 등을 통해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표출하는 것. 하지만 이같은 행동들은 지적·자폐성장애인의 성적 권리 문제가 아닌 성추행·성폭행 가해자 취급을 받는다. 즉 지적·자폐성장애인의 성 문제는 장애 자체의 문제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주위 사회의 환경적인 성억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성적행동, 이대로 둬도 괜찮은가?

A씨는 아들의 성적 행동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묻기 위해 담당 정신과 의사를 찾았단다.

의사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성적 충동을 느낀 한 비장애학생이 화장실에 가서 본인 스스로 자위행위를 통해 처리하고 나온다면,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으며 “준이에게도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알려준다면, 우려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A씨는 자신부터가 아들을 차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아들의 ‘자위행동’을 ‘고추놀이’라고 이름 붙이고, 반드시 ‘혼자’, ‘은밀한 공간’에서 해야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A씨는 “처음에는 아이가 쉽사리 받아드리지 못했지만, 인지적인 방법이 아니라 생활적인 방법으로 가르치다보니 어느 순간 습관이 됐다.”며 “이후 아이의 지나친 성적 행동을 자제시키기 더욱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생활 속에 중재, 생활 속의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다른 부모님들도 아이의 성적인 행동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국발달장애가족연구소 민일심 성 상담가는 “비장애학생에게는 한 두 번만 알려주면 되지만, 지적·자폐성장애학생에게는 지속·반복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알려줘야 충분한 교육이 가능하다.”며 “무엇보다 부모들의 꾸준함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조건 ‘안돼, 하지마’ 보다는 ‘왜 안되는지’를 감정과 느낌을 중심으로 알려줘야 한다.”며 “이를테면 ‘성기를 노출하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어떨까?’, ‘너는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이 장소에서 하는 건 별로 보기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식으로 기분에 대해서 공유하고, 공감하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구체적인 교육 방법을 설명했다.

 
 

당사자·부모 대상 장애맞춤형 성상담·교육 마련돼야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직까지도 아이의 자위행위나 성적인 호기심을 발견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성교육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민 성 상담가는 “기성세대는 이전에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고, 성을 직접적 성행위 또는 성교 중심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라고 꼬집으며 “장애학생의 성교육 이전에 부모 또한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준이 어머니에 따르면 현재 장애인복지관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부모 대상 성교육은 장애유형 및 기능 수준 등을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어, 부모로부터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으며 그 기회마저도 부족한 실정이다.

뿐만아니라 장애학생 당사자에게 실시하는 성교육 또는 성상담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김 강사에 따르면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단체 또는 재단은 한국발달장애가족연구소·경원사회복지관·탁틴 내일여성 정도에 불과하며, 학교 내에서 교육을 실시한다고 할지라도 교육 시간이 매우 적거나 장애·비장애학생 구분없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 강사는 “장애학생은 비장애학생보다 인지 수준도 낮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기술도 부족하기 때문에 접근방법이 달라야한다. 이같은 교육은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하며 “성교육을 통해 장애학생들이 성폭행이나 성추행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 또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교육인형극단 멋진친구들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태환(25, 발달장애) 단원은 한국발달장애연구소에서 실시하는 성교육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성 차이’, ‘신체적 접촉에 대한 예의’, ‘성폭력에 대처하는 자세’ 등에 대해 알게 됐다고 밝히며 “성교육을 받은 후, 일상생활이 좀 더 개선됐다는 걸 확실히 느낀다. 성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애어린이 성 정체성 확립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마련돼야

A씨는 “전문가의 상담이나 교육도 물론 중요하지만, 생활 곳곳에서 장애인의 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A씨에 따르면, 준이학생이 이용하고 있는 장애인복지관 수영장에는 성이 다른 보호자가 장애인의 탈의를 도울 수 있는 ‘가족탈의실’이란 곳이 있다. 엄마와 함께 가족탈의실을 이용하던 준이학생은 어느 날부터인가 이용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남자탈의실을 이용하겠다’고 우기는 준이학생과 ‘혼자서 신변을 처리할 수 없으니 안된다’고 말리는 A씨의 실갱이는 계속 됐고, 결국 남성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A씨는 “알게 모르게 이성들에게 2차 성징이 나타난 아이의 몸이 노출되다보니까 아이가 성적수치심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누구한테는 노출해도 되고, 누구한테는 노출하면 안된다는 것을 생활적인 측면에서 가르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털어놓으며 “장애인 수영장에 아이들의 탈의지도를 할 수 있는 남·녀 전문요원을 배치해 아이가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을 좀 더 확실하게 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 강사는 “지적·자폐성장애인 성인의 경우, 가정을 만드는 데까지 많은 관심을 갖지만 낭만적인 생각만 있을 뿐 가장의 책임 및 양육 등에 있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하나의 가정을 꾸리고, 어엿한 성인으로 살 수 있도록 ‘교육’과 더불어 국가의 경제적·사회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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