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워라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이 종이를 볼 생각을 하니, 공허함이 든다. 내가 살아온 삶을 종이 한 장에 담기에는 이 종이가 너무 작구나. 무엇인가 이루고자 했던 과거의 열정은 사라지고 지금은 지친 몸뚱아리와 나약한 내면만이 지금의 내 모습이니까. 한 때는 나 역시도 불같이 타올랐고 얼음처럼 차가웠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갖기 위해, 내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갈등과 시련에 익숙해져야만 했고 껍질뿐인 번데기처럼 나약해졌다. 아들, 딸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재산을 남겨주지 않을 것이라 수차례 이야기했던 것을 잊지 말거라. 그것은 너희들이 내 재산에 의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 한 푼이라도 더 가지려고 싸우지 말거라. 힘든 식구에게 조금 더 주었으면 좋겠다. 하늘에서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화목한 집안이 되기를 바란다. 남긴 재산에 대해서 분명히 결정해야겠지. 내 재산을 너희들 어머니에게 맡기고 싶다. 분명 그 사람은 너희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으로 잘 분배하겠지.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이니, 이성적으로 필요한 내용만 쓰고자 했는데 감성이 이 글에 새며들었구나. 너희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너희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가족을 배려하는 모습으로 살아갔으면 좋겠구나.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운 사람이 되어 너희들이 임하는 분야의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모두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나는 주목받고 싶었다. 그래서 젊은 시절 많은 일과 경험을 해볼 수 있었지. 하지만 뒤돌아보니 내 분수에 맞지 않은 일들이 틀어진 경우가 많았다.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되, 가족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부담을 끼칠 일들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장례식은 거창하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죽었다라고 알려지는 것보다 자연스레 잊혀져 한 번씩 나라는 사람은 뭘 하고 있을지 한 번씩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를 화장으로 남해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뿌려줬으면 좋겠다. 평생 동안 기자로 활동하며 돌아다녔던 몸, 죽어서도 세상 곳곳을 누비며 여행하고 싶다. 여보, 당신에게는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 편지를 보며 힘들어하지도 슬퍼하지도 마. 대학 캠퍼스에서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라 느껴졌었지. 얼어붙은 듯 강한 인상 속에서 당신의 화사한 미소를 보고 용기를 낸 이후로 어느덧 30년이 넘었네. 항상 이기적이고 내 몫을 챙기기 바빴던 나는 당신을 통해서 ‘배려’와 ‘인내’라는 감정을 배울 수 있었어. 미안해. 손에 물은 묻혀도 함께 당당히 이겨나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네. 인생은 한번 뿐이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이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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