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몰라서 이글을 쓴다. 너희가 이 유언장을 발견했을 때 내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이렇게 갑자기 내가 죽을 줄은 몰랐지만 마지막으로 쓰는 글이라 생각하니 머리가 하얗게 백지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여태 살아온 것을 생각해 보면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서 기분이 슬프지만은 않다. 어릴 때부터 조금 가난해서 남들과 다르게 편안한 삶을 누리진 못했지만 부모님께서는 티가 나지 않도록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옷만 입혀주셨지. 돈이 부족해서 농어촌전형으로 동의대라는 대학에 붙어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생활을 했지. 그 때부터 빚을 지고 사회생활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 남들보다는 조금 더 악착같이 공부를 하고 조금 더 열심히 살았어. 그래서 좋은 직장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우리 두 아들들을 낳고 나니 부모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더라.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못하고 부모님을 보내드렸지만 내가 이제는 부모님 곁으로 갈 때가 된 것 같네. 이제는 사회가 나에게 준 것들을 내가 다시 사회에 환원할 때가 온 것이겠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고 많은 추억들이 생각나는데 사람들과는 함께 할 수 없지만 이 추억만큼은 내가 가지고 갈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 한 가지 부탁만 남기고 떠날게. 내 장례식을 슬픈 분위기보다는 신나는 분위기로 해주었으면 좋겠고 내 몸은 화장해서 나의 부모님과 살았던 거창 강변에 뿌려주었으면 좋겠어.

남편에게

여보, 내 인생의 동반자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가게 되어서 정말 미안한 마음입니다. 내가 없어도 혼자 잘할 거라 믿지만 몇 가지 적어 놓고 갑니다. 세탁기 앞에 보면 종이 한 장이 있을 텐데 거기에 적힌 순서대로만 누르면 되고 양말은 항상 뒤집어서 벗지 말아주세요. 또 냉장고 앞에 가보면 당신이 좋아하는 내가 만든 김치찌개 레시피를 적어 뒀으니 굶지 말고 꼭 챙겨먹어요. 당신 건강 생각하는 거니깐 칡즙은 항상 챙겨 드세요. 당신 그거 안 먹은 날에는 항상 피곤해 했잖아요. 칡즙 들어있는 칸 바닥에 보면 내가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한 통장에 모아 놨으니 당신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여행 꼭 다니면서 살아요. 당신과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쉽지만 아들들이랑 조금이라도 더 좋은 추억 쌓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정말 당신을 만나서 후회해 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고 다시 태어나도 우리 꼭 만나도록해요. 정말 많이 사랑해요.

아들들에게

아들들아 이엄마가 먼저 간다고 너무 슬퍼 하지마라. 둘 밖에 없는 형제끼리 그만 좀 싸우고 너희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술, 담배 줄였으면 좋겠어. 그래도 엄마는 너희 손자 소녀들을 다보고 가는 행복한 사람인 것 같네. 너희에겐 어떤 엄마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너희가 태어난 그 순간 너무 벅차고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어.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나는 너희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단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 키를 훌쩍 넘은 너희들을 보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두 개나 생긴 것 같았어. 아들들아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많이 서툴고 너희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것은 너희의 판단이겠지. 엄마가 없어도 혼자 남으신 너희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 이렇게 이제는 부모를 자식에게 맡길 때가 왔구나. 아들들아 엄마 방 장롱 옆에 가장 윗 서랍을 열어보면 갈색 서류 봉투가 두 개 있을 거야. 큰아들이름과 작은아들이름 써놨으니 같이 꺼내보고 그 안에 엄마 자동차와 엄마가 사놓은 건물 두 개를 아들들 이름 명의로 바꿔놨으니깐 싸우지 말고 헛되이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너희들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뒷바라지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 그럼 엄마 이제 진짜 갈게. 이제는 엄마 마음 편하게 갈수 있을 거 같다. 사랑했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더 많이 사랑할게.

친구들에게

그동안 나랑 친구해주느라 고생 많았다. 나도 그동안 너네랑 친구하기 힘들었지만 덕분에 힘들 때 마다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줘서 고맙고 오글거리지만 너희랑 친구라서 너무 좋았어. 진짜 고맙다는 말 말고는 더 말하기 싫다. 고맙다.

마지막으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 한번 말하고 두번 듣고 세번 고개를 끄덕인다. 살면서 이 말을 새겨듣고 실천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먼저 다가오더라. 죽기 전에 더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만남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 다들 나의 좋은 사람들이 되어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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