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사랑하는 남편!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행복했었노라 생각하길 바라며 이 편지를 씁니다..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는 따뜻한 한줄기 햇살 아래 세상과 등을 졌다.20대에 만나 한결같이 내 곁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켜준 사랑하는 내 남편 당신에게 마지막 가는 길까지 나는 한 마리의 나비처럼 기억되고 싶습니다.당신에게만은 여리고 사랑스런 여자였길 바래요. 아이들 키우느라 결혼 전 연애시절 한달에 한번 가까운 곳이라도 꼭 여행가자던 약속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그래도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수없이 지날 동안 놓치 않은 그 손, 영원히 놓치 말자던 그 손, 오랜 잠에 들 나를 위해 어젯밤 잡아준 그 손, 난 당신의 그 따뜻한 손이 참 좋습니다. 여보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갔으면 난 어떻게 남은 생을 살았을까 적적해서 어떻게 견뎠을까 내 곁에 항상 있어줄것 같던 당신이 없으면 난 무서워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내가 먼저 가게되니 당신은 남은 날 내생각 않고 즐거운 나날 보내다 왔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혹시 내생각이 난다면 눈물 흘리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예쁜 꽃 꺾어다 우리 결혼사진 앞에 놔둬줘요. 그 사진 속 내가 당신을 보며 환하게 웃어줄 거에요.여보 내가 결혼하면 항상 맛있는 밥상 차려준다고 했던 거 기억 나나요? 잘 지켰는지 모르겠네.. 대학 때 배운걸로 난 우리 가족 건강한 식단 차릴거라 자부했는데 귀찮을 때 배달음식 시켜 먹자고 했던게 생각 나 미안하네요. 여보 우리 딸아들, 다 컸으니 엄마 없다고 밥 안먹고 울고만 지내진 않겠지요? 당신이 아이들 가끔 불러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래요. 그래도 다행인 것 같아요. 우리 자식들이 우리를 닮아 그런지 행복한 가정 꾸리고 잘 사는것 같아요. 여보 우리 맞벌이로 젊어서부터 모아 둔 돈 내가 통장 따로 만들어서 당신 회사 가방 놔두는 서랍밑에 상자에 챙겨놨어요. 혹시 도둑이 들면 절대 못찾는 곳에 두려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당신 마저 모르게 했네요. 5000만원 이에요. 우리 애들 대학 다닐때 등록금 하려고 모아둔 것들 다 장학금 받아서 다닌다고 하나도 안써서 더 빨리 모을 수 있었어요. 그거 우리 애들 각자 2000만원씩 주고, 당신이 1000가지세요. 당신은 술,담배를 안해서 어디다 쓸지 무지 고민이겠어요. 자식들 지들도 돈 번다고 아버지 하라고 하더라도 그냥 줘요 우리보다 필요할 곳도 많도 지들 자식 들어가는 돈도 꽤나 들테니..여보 난 정말 당신이 우리부모님 한테 정말 흠 잡을 데 없는 훌륭한 사위 였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나 뿐만 아니라 우리엄마,아빠도 당신 정말 좋아하셨어요.당신이 모든일에 솔선수범이고 가정에 소홀하지 않은 남편이라 그런지 저 역시 당연스레 시부모님께 잘하게 됬고, 또 그만큼 사랑 받을 수 있었어요.여보 이렇게 보니 우리 정말 천생연분 이네요.ㅎㅎ지금쯤이면 나 없다고 내사진 안고 편지 보면서 울고 있을것 같은데, 여보, 그러지 말아요. 나 당신이 사랑해준 그 시간들 고스란히 가슴에 안고 항상 하늘에서 당신 지켜보고 있을테니, 너무 늦게도, 너무 일찍도 오지말고 딸아들 얼굴 몇 번 더보고 오시구려.여보 나 젊었을때나 늙어서나 꽃 참 좋아했던 거 기억하시나요. 백합을 특히나 좋아했는데 당신은 하얀 백합을 선물할 땐 항상 나를 닮아 더 예쁘게 느껴진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죠.저는 그 말이 진심이든 빈말이든 너무 듣기 좋았어요.여보 그 백합, 그리고 빨간 장미랑 노오란 해바라기, 우리 집 앞마당에 나랑 같이 묻어줄 수 있나요? 나 화장 끝내고 나면 납골당으로 보내지 말고 우리집 앞마당에 묻어주세요.정성스레 물도 주고 예쁜 꽃이 피면 그 꽃이 나라고 생각하시고 내가 당신과 항상 함께 있단 생각으로 우울해 하지 말았으면 해서 그래요.백합은 내가 좋아하던, 나를 닮은 꽃이니 당신은 자연히 나와 함께있단 느낌을 받을거에요.빨간 장미는 내가 당신을 향한 마음이 그만큼 뜨거웠고 아직 식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이고, 노란 해바라기는 푯말대로 변하지 않는 일편단심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해서에요. 당신이 힘들때 그 꽃들을 볼 때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길 바래요.여보 가끔은 꽃들이 활짝핀 햇살 가득한 오후에 사랑하는 딸, 아들 가족 불러모아 맛있는 식사도 하세요. 꽃들이 바람에 흔들릴 땐 가끔 쳐다도 봐 주시구요. 제가 당신과 아이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거랍니다.여보 그렇게 동화같은, 예쁜 나날들 보내다 내 곁으로 와요.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해준 그대, 내가 이 세상에서 했던 선택중 가장 잘했고 후회하지 않았던 선택은 당신을 사랑한 일이었다는 걸 알아주세요. 당신 역시 나 변함없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찬바람이 부는 어느날, 길을 잃고 울고 있던 나에게 한걸음에 달려와준 그대에게, 그 날 잡은 그 손을 평생 놓지 않겠노라 맹세했던 그대에게, 60여년 동안 변함없이 사랑스런 소녀로 살게 해준 그대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여보 감사했어요.빅토르 위고의 인생은 꽃, 사랑은 그 꽃의 꿀 이라는 글귀처럼 저는 이제 꽃이 될테니 당신은 꿀이 되어 만나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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