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작품 전반에 걸쳐 6.25로 파괴된 우리 민족의 모습과 그에 대한 회복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으로 가장의 자리는 비어버렸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어머니와 그 업을 이어받는 장남, 도피처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는 젊은 여자와 철없이 유흥에 빠진 부잣집 자식들이 밀접하게 얽힌 채 등장한다.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생생하게 느끼기 어렵다. 분단선은 저 멀리에 있고, 종종 일어나는 도발은 뉴스 속의 이야기 같다.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외국인들의 불안이 쓸데없는 난리법석으로 여겨지는 순간도 있다. 고작 몇 십 년 된 전쟁이 이렇게나 멀게 느껴진다. 작가는 이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소설은 주인공의 회고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점은 전쟁이 결코 끝난 것이 아니며, 전쟁의 잔재와 상처는 여전히 내려오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은 사상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전쟁 이후 우리나라가 사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른 생각에 대한 포용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그러한 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에 서서도 자신의 사상을 고집하는 인물과, 그런 인물을 포섭하기 위해 미끼를 던지는 국가의 모습은 충분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양 쪽 그 어느 곳도 옳게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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