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특성을 연구하거나 약물을 개발할 때는 동물실험을 수 차례 반복하고도 여러 단계의 복잡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보인 후보 약물이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흔하고 안전성을 충분히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최근 실험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면서 동물실험까지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질병 연구 모델이 나왔다. 바로 인간 장기의 축소판인 초소형 인공장기 ‘오가노이드(organoid)’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기의 최소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든 3차원 세포집합체를 뜻한다.

● 줄기세포로 무제한 복제 가능…유전자 교정 기술로 유전성 질환 모델로도 활용

토머스 하퉁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팀은 12일(현지시각)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회의에서 인간의 뇌세포를 배양시켜 만든 0.35㎜ 크기의 ‘미니 뇌’를 개발해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자폐증 등 뇌와 관련된 질병 연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성인 5명이 기증한 피부 세포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만든 뒤 서로 다른 뉴런 4종과 지지세포 2종(성상세포, 희소돌기아교세포)으로 분화시켜 미니 뇌를 배양했다. iPS세포에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자 스스로 뇌와 유사한 모양으로 자라면서 8주 만에 3차원 미니 뇌가 만들어졌다. 피부 세포만 있으면 같은 방식으로 무제한으로 복제가 가능하다.

이 미니 뇌는 1만~2만 개의 뇌세포로 이뤄져 파리 눈알 만 하지만 스스로 전자신호를 전달하는 등 실제 인간의 뇌처럼 ‘신경세포 활성(neural activity)’을 나타냈다. 뇌 활성을 측정하는 뇌전도(EEG)와 유사한 전극을 이용해 미니 뇌의 활동도 측정할 수 있었다.

하퉁 교수는 “약물을 투여하자 뉴런들이 서로 신호를 전달하며 소통하는 등 뇌 활동의 원초적인 단계로 볼 수 있는 반응이 나타났다”며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피부로 미니 뇌를 만들면 약물의 효과를 직접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각광받는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로 줄기세포의 유전자를 교정한 뒤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유전성 질환의 발생 기전도 연구할 수 있다. 최근 지카바이러스 확산으로 이슈가 된 소두증도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재 미니 심장, 미니 신장, 미니 간, 미니 갑상선 등 다양한 오가노이드가 장기의 질병 모델로 쓰이고 있다.

● 장기 기능 개선, 장기 이식에도 활용 가능성 높아

오가노이드는 질병 모델에서 한 단계 나아가 장기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도 활용될 전망이다.

퀴아오 저우 미국 하버드대 줄기세포연구소(HSCI) 교수팀은 쥐의 위에서 채취한 조직을 활용해 ‘미니 위’를 배양한 뒤 이를 다시 쥐의 몸속에 이식해 인슐린을 분비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줄기세포 분야 학술지 ‘셀 스템 셀(Cell Stem Cell)’ 18일자에 발표했다.

당뇨병 환자는 혈당 조절 호르몬인 인슐린을 분비하는 ‘β세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인슐린 주사를 계속해서 맞아야만 한다. 만약 인슐린을 분비하는 β세포를 지닌 미니 위를 만들어 환자의 몸에 이식한다면 이런 불편을 줄이고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쥐의 위와 십이지장 사이의 상피 세포로 만든 iPS세포를 β세포로 분화시켜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이 미니 위를 β세포가 전혀 없는 쥐에게 이식하자, 오가노이드의 β세포가 인슐린을 분비하면서 쥐의 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효과는 최소 6개월 동안 지속됐다. 반면 β세포가 전혀 없으면서 오가노이드를 이식 받지 않은 쥐는 8주 만에 죽었다.

저우 교수는 “자신의 피부 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 치료법을 환자 맞춤형으로 임상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β세포를 손실한 당뇨병 환자의 췌장 기능을 개선하거나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향후 오가노이드의 크기를 더 키우면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장기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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