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간호

 서비스업으로 뛰어나고 유명한 우리나라 그 중 간호사도 서비스업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도 발전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발전해온 우리 나라 간호의 초기는 어땠을까? 

 우리나라에서 간호 활동이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시기는 구한말 시기라고 말 할 수있다. 구한말이란? 조선말기에서 대한제국까지의 시기인데 선교사와 선교의사, 선교간호사가 입국함으로써 의료 사업을 통한 선교활동이 시작되었다. 전 근대적 간호전통과 상호간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근대적 간호체제를 이루어 나가기 시작했다.

 구한말 병원의 설립으로 고종 14년, 일본 해군이 부산에 제생의원을 설치하여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처음

최초 일본인 의원, 제생 의원
최초 일본인 의원, 제생 의원

으로 서양의학에 의한 병원을 개설 한 것이다. 하지만 고종 20년에 제생의원이 육군성의 소관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일본 거류민단으로 이관되어 일본 공립병원으로 개칭 하였고 고종 33년에는 공립병원으로 사용되었다가 청일전쟁이 벌어지면서 병참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고종 17년, 운산 생생병원은 개항과 함께 설치되었다. 고종 21년에 일본해군으로부터 육군에 이관되었다가 고종 23년에 그 경영을 민간에 위임시켜 공립병원으로 개칭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은 제중원이다. 갑신정변, 민영익 및 청병들 치료 후 정부와 민중들의 신임을 얻어 '알렌'의 명성으로 서양의술에 대한 신용이 갑자기 두터워졌고 알렌이 한국정부에 서양식 병원을 개설할 필요성과 경상 비용을 건의 하며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고종이 광혜원 규칙을 반포하였고 혜민서와 연결성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이름으로 선교회(의료원장)과 한국정부(건물, 의료기구)를 병합하여 광혜원을 개원하였다. 개원 일주일 후에 의미가 강한 이름인 '제중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의료를 위해 힘써준 알렌
우리나라의 의료를 위해 힘써준 알렌

 제중원의 간호로 "광혜원 규칙"에 필요한 인력으로 간호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제중원 설립 직후 약제사 겸 간호사로 일한 사람은 선교사 언더우드였다. 당시 전문적 간호보단 '돌봄'으로서의 간호를 원하는 제중원이었고 조선 시대 남녀 유별의 내외법 관습이 제중원에서 작용하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녀제도의 전통을 이었다. 알렌의 요청으로 총명한 기녀 2~3명씩 선발하여 기녀 5명이 역사상 최초로 입학, 서양 의술과 간호학을 습득한다. 그리하여 "광혜원 규칙"에는 학생 4명을 선발, 병원에 배치하여 이들 학생들이 환자들을 간호, 의사의 지시에 따라 진료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제중원에 속한 의학당이 개교하고는 생도들이 간호업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제중원 학당의 학생과 환자의 간병인이 함께 담당하였다.

당시 병원 간호사들은 12시간 근무하였으며, 낮번 간호사는 아침 7시에 근무를 시작하였다. 또한 환자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8시에 기도회에 참석해 성경 공부를 환자들과 함께 하였다. 오후 5시에는 한식의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드레싱과 마사지 등을 수행하며, 환자 상태를 보고 하기 위해 낮번 동안의 활동 내용을 기록하였다. 간호사들은 '지시는 하늘의 첫째가는 법'이며 복종, 인내심, 친절은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이렇게 교육받은 간호사들은 질병에 대처하도록 준비될 뿐 아니라 청결, 친절, 충성, 온순하며 생의 목적을 더 귀한 것에 두도록 초기 간호교육자들은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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