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케인스

▲ 케인스
▲ 케인스

경제학자 케인스

국적 영국
출생 - 사망 1883년 ~ 1946년
직업 금융 경제학자

영국의 금융 경제학자.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인도성에 근무(1906~08), 1908년 이후 모교의 경제학 교수로 종신하면서 1912년 《Economic Journal》의 편집 주임으로 33년간 겸임, 동지(同紙)의 권위를 높였다. 피구와 더불어 신고전 학파의 대표자. 1913~14년 왕립 인도 통화 금융 심의회 위원, 1915~19년 재무성에 관계하여 제1차 대전후 강화 회의에 재무성 수석 대표로 참석, 강화 조약 중 특히 배상안의 모순을 지적하여 독일의 배상금 지불이 세계 경제발전의 화근이 된다고 지적하고 국제간의 전채(戰債)의 상쇄를 주장하여 유명해졌으나 그의 제안이 채택되지 않아 사임했다. 1919년 《평화의 경제적 귀결 The Economic Consequence of the Peace》을 발표하여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뒤에 잉글랜드 은행이사(1941), 브레턴 우즈(Bretton Woods) 국제 금융회의 부흥 개발 은행 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관리 통화제를 제창하고 금본위 제도를 반대했으며 항상 시사에 관한 탁견을 제시하였다. 또 정통학파의 경제 이론은 경제의 특수한 경우의 분석에 불과하다고 하여 보다 포괄적인 일반 이론의 수립을 꾀했는데, 많은 학자가 그의 설에 귀의, 케인스 혁명을 불러 일으키고 케인스 학파가 성립되었다. 미국의 뉴딜 정책은 그의 영향에 의해 생긴 것이다. 1943년 전후의 금융 기구에 관한 '케인스 안'을 발표했고, 영미 금융 협정 성립을 위해 노력했다(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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