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왕릉

 
 

태조 이성계 .

조선의 개국조인 이성계를 말하기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생전의 일은 놔두고 오늘은 사후의 일을 잠시 이야기 해볼까요?

고려 왕조의 문을 닫고 개국을 한 태조의 삶은 비극적이었고
그 삶을 마감한 곳은 창덕궁 광연루의 별궁 이었습니다

1408년 6월 18일의 일이었지요
태조는 태종과의 악연이 깊은 신덕왕후 강씨를 무척 사랑했고 생전에 그녀의 옆에 묻히기를 소망 했었습니다

태종은 나름 효자였으나 애증이 깊은 아버지의 소망을 싹 무시하고 하륜을 시켜
명당을 고르게 하니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입니다

동구릉 , 도성의 동쪽에 있는 아홉개의 능이란 뜻이니 무덤이 생길 때 마다
동오릉 동칠릉이라 부르다가 1855년 철종 6년에 수릉이 이장되면서
동구릉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하나의 왕조가 생길 때 부터 막을 내릴 때 까지 왕릉들이 모여 변하지 않았으니
명당이라 부를만 합니다

현재 사적 제193호이며 9개의 능에 17위의 유택이 모셔져 있으며
2009년 2월 27일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태조의 능은 건원릉이라고 불리웁니다

태조는 신덕왕후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녀의 무덤을 도성안에 만들었습니다
도성 안에는 무덤을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 이었으나 그런것 조차 무시해버릴 만큼
신덕왕후를 사랑했던 것이지요

경복궁과 가까운 한성부 서부 취현방에 신덕왕후의 무덤을 만들고 정릉이라 부르며
가까이 했으나 그의 사후 태종은 이 정릉을 철저히 부숴버리고 맙니다

태조가 죽자 태종은 정릉을 도성밖 양주로 옮겨 버리고 지위도 후궁으로 깍아 내렸습니다

무덤의 봉분을 완전히 헐어 평토하고 정자각을 헐어 내버렸으며
그녀의 무덤을 지키던 석물들을 홍수로 무너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여 백성들이 밤낮으로 밟고 다니게 했습니다

신덕왕후를 향한 태종의 미움이 알마만한 것이었는지 엿볼수 있습니다
태조 또한 아들의 그런 마음을 짐작하여 자신을 그녀의 옆에 묻어줄리 없다 생각했는지
조상의 땅 함흥에 묻어줄 것을 유언 했습니다

그러나 개국조인 아버지의 무덤을 먼 함흥에 만들수 없었던 태종은 하륜이 찾아낸 명당지에 태조를 모셨고 그대신 함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로 능을 덮었습니다

그래서 건원릉은 다른 왕릉과는 달리 억새가 자라는 유일한 무덤입니다

건원릉을 중심으로 그 후손인 왕과 왕비의 무덤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곳은
동구릉 뿐입니다

비록 신덕왕후와 함께 있지는 못하였으나 많은 후손들과 함께 있으니
태조도 흡족할런지도 모릅니다

태종은 이 동구릉에 있지않고 멀찍이 다른 곳에 묻혔으니
아버지의 호통이 무서웠던듯 합니다

동구릉에 누가 있는지 알아 볼까요?

문종과 현덕왕후의 무덤인 현릉

선조와 인목왕후의 무덤인 목릉

인조와 장렬왕후의 무덤인 휘릉

현종과 명성왕후의 무덤인 숭릉

경종과 단의왕후의 무덤인 혜릉

영조와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 무덤인 수릉

헌종과 효현 효정왕후의 무덤인 경릉

이렇게 해서 동구릉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비극은 무덤에 잠들고 동구릉의 숲길은 사계절 어느 때나 걸으며
산책하기에 참으로 좋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서 펼쳐지는 사이사이의 숲길은 9개의 능을 따라 조성되어
두어시간은 산림욕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갈참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재실을 지나면 아무 능이나 마음 내키는대로
숲길을 따라 걸으면 자신도 모르게 역사의 이야기에 젖어들게 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때 가든지 숲은 나름의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한 시대를 호령하던 사람들은
그 아래 잠들어 있습니다

죽음은 귀천 빈부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찾아와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알려주니
무덤을 찾아가 보는 것은 과히 나쁘지않은 일이지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조선의 왕릉군이라는 의미도 깊은 곳이니 한 번쯤은 가봄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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