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 모든 일은 잔잔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다.
▲ 모든 일은 잔잔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다.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생물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들어봤을 수도,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을 수도, 또는 처음 들어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이 이름을 처음 들으면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선충이라 하면 보통 회충, 요충과 같이 기생충을 생각하기 쉬운데, ‘예쁜꼬마’라는 단어로 수식받는 것이 특이하다. 이 생물은 이름과 달리 예쁜 꼬마를 닮지도, 예쁜 꼬마를 연상시키지도 못하는 조그만 생물이다. 지렁이 혹은 민달팽이 정도를 연상시키는 모양에, 길이는 1mm밖에 되지 않아 거의 보이지도 않는 이 선충은 생김새와 이름과 학계에서의 활약이 모두 따로 노는 특이한 생물이다.

학명은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분류학적으로는 선형동물문 쌍선강 간선충목 간선충과 신생선충속에 속한, 말 그대로 선충이다. 선충이라 함은 아주 작은 실처럼 생긴 생물로, 주로 기생을 하며 알려진 선충으로는 반려견을 키운다면 알고 있을 심장사상충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쁜꼬마선충이 ‘예쁜’ 이유는 따로 있다. 모든 예쁜꼬마선충은 암컷 959개, 수컷 1031개의 똑같은 수의 세포를 가지며 해부학적 구조가 모두 동일하다. 모든 세포는 정해진 과정을 거쳐 생기고 사라지며, 정확히 302개의 똑같이 연결된 신경세포를 가진다. 이런 특징으로 연구에 활용되기 좋아 1900년대부터 많은 과학자가 이 선충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몇 개의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여러 연구 중 필자의 관심을 끈 부분은 신경세포 연구였다.

신경세포의 연결을 모두 표시한 지도를 커넥톰(Connectome)이라고 한다. 인간은 1000억 개가 넘는 뉴런을 가지기 때문에 커넥톰을 알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가장 연구가 쉽다고 느껴지는 초파리 역시 아직 10%정도 밖에 알아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예쁜꼬마선충은 1986년 존 화이트라는 과학자에 의해 커넥톰이 완성되었다. 존 화이트는 1mm밖에 되지 않는 이 선충을 8000조각으로 잘라 그 단면을 하나씩 보며 신경세포의 지도를 그렸다. 놀라운 시도이다. 그렇게 이 선충에게 어떤 뉴런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까지 알게 되었다. 뉴런 간 연결의 세기는 완벽히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는 모든 생물 중 최초로 커넥톰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색다른 실험을 시도했다.

레고는 모두들 들어봤을 장난감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다양한 조각을 조립하는 그 레고가 맞다. 그중 레고 마인드스톰은 모터나 센서를 달 수 있는데, 과학자들은 레고 마인드스톰으로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를 재현했다. 벽을 보면 뒤로 돌라는 식의 프로그래밍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뉴런이 서로 연결된 것만을 재현하였는데, 놀랍게도 이 레고는 예쁜꼬마선충이 행동하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자면, 레고에 신경정보를 입력했더니 선충과 비슷한 뭔가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상상을 이어가다 보면 인간도 그저 뉴런의 연결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인가 하는 철학적 논의로 이어진다. 연구가 계속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무겁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생물이 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생물도 셀 수 없이 많다. 국내 자생종만 하더라도 5,800여 종이 있으며, 전 세계 생물종의 수는 많게는 1억 종까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다른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다채로운 생물종을 하나하나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는 만큼 보이고, 보려고 하는 만큼 볼 수 있다.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다면 집에서 키우는, 혹은 집 앞에 있는, 매일 보는 식물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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