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한국장애인개발원 추계학술대회 열려

 
 
“정부에서 자꾸 6개월마다 소원서를 보내는 거야. 그거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는 거야.”

“바라는 것은 앞으로 계속 일해서 임대주택이나 월세방 얻어서 사는 게 목적입니다.”

병원이나 시설 등의 제도적 공간에서 거주 경험이 있는 정신장애인에게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정주’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서울 이룸센터에서 열린 2013년도 한국장애인복지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정신장애인의 제도적 공간 거주 경험’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한울사회복지연구소 장혜경 소장은 “현재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제도가 제공하는 공간에 오랜 기간 머물고 있고, 수많은 제도적 공간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정작 이곳들을 거치며 살아온 정신장애인 한 사람의 생애 경력은 어떠한가에 우리는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장 소장이 조현병 진단 후 10년 이상 경과한 18인의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조사한 결과 여러 곳의 거주 공간을 거친 연구 참여자들의 삶의 공통적 속성은 가족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벗어나 병원, 정신요양시설, 입소생활시설, 주거생활시설, 공동생활가정 등 여러 형태의 제도적 공간에 떠돌아다닌 ‘부유성’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과의 단절 및 사회적 경력이 없어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연구 참여자들은 거주 공간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살게 하는 힘인 ‘정주성’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

이들에게 제도적 공간에 머무는 오랜 시간 동안 가족으로 이뤄진 ‘집’은 이미 존재하지 않거나 연구 참여자들을 받아들일 기준을 갖추지 못했고, 이로 인해 자활이나 직업 획득을 통해 이상적 거주 공간인 독립 거주를 하길 꿈꿨다.

장 소장은 “독립된 자신만의 거주 공간을 확보했다고 해서 정주함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며 “정신장애로 인해 자신만의 거주를 유지하기가 힘에 겨워 다시 거주 공간의 이전은 일어났다.”고 밝혔다.

‘공간에서의 부유성을 벗어나는 것’과 함께 연구 참여자들이 희망하는 것은 ‘친밀한 인간관계의 영속성’이었다.

장 소장은 “같은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동료 거주자들과 유사가족과 같은 친밀성은 얻을 수 있지만 거주공간의 변화는 상시적이었으므로 그 관계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부분의 제도적 공간에서 연구참여자들은 전문가나 직원보다 낮은 지위에 있었으며, 지위는 관계에 그대로 투영됐다. 이것이 부정적인 방식으로 관계에 투영될 때 그 관계는 위계적인 것이 되었다.

아울러 연구 참여자들에게 ‘먹고 자기’의 수월성은 거주 공간을 선택하는 데 가장 먼저 가늠해 봐야 할 삶의 제1척도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제도적 공간을 회상하면서는 ‘개방성’이라는 화제를 자주 꺼내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지역사회 기반서비스 중 지역사회재활시설이나 정신보건센터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연구 참여자는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먹고 사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할 방편이 없었기 때문.

 
 
또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온전히 그곳으로만 존재하는 제도적 공간 안에서 자신들의 존재 방식에 대해 연구 참여자들은 ‘갇혀 있다’는 표현을 공통적으로 사용했으며 그 공간들은 외부세계로부터의 진입과 진출을 차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장 소장은 정신장애인의 거주와 관련된 사회복지 정책에서 ▲정신장애인 한 개인의 생애 과정을 존중하는 정책 수립 ▲부랑인 및 노숙 정책과 통합적으로 설계 ▲‘정주함’을 담보하는 정책 우선 ▲상호의존적 삶 추구하는 정책 지향을 꼽았다.

가득한집 이현주 시설장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정신보건 정책은 전달체계가 상이해 우선 정부부처간의 통합 논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며 노숙인 정책에서도 남성과 여성 노숙인의 차별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은 가정폭력, 이혼, 가출, 정신장애로 노숙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남성의 노숙 원인은 여성과 달리 실업 등의 경제적 측면이 압도적이라는 것.

한국정신장애인연합 김락우 대표는 “정신질환으로부터 회복하는데 있어서 당사자에게 영향을 주는 지점과 범위, 역할이 다르거나 한정돼 있다.”며 “당사자는 가족 외 가장 많이 접하는 정신의료 및 보건기관에서 만나는 의료인·종사자·동료들의 모습에 동화되며 회복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정신장애인의 제도적 공간이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 설명했다.

김 대표는 “정신보건센터는 내성적이었던 성격을 외향적으로 돌려놓는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며 “정신보건센터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순간, 그 공간은 사랑이 많이 흐르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복지TV부울경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