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무엇인지, 그 해악이 무엇인지 우리도 아직 모른다. 그래서 규제는 시행령으로 넘겼다.”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내년 1월 시행될 ‘AI 기본법’을 대표 발의한 조인철 의원이 남긴 말이다. 솔직함은 미덕일 수 있으나, 입법의 책임성 측면에서 보자면 이토록 위험한 고백도 없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이 법안은 ‘선(先)진흥 후(後)규제’를 표방하며 대한민국을 AI 3대 강국으로 이끌 초석으로 포장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기술의 불확실성을 핑계로 국가의 책무를 행정부의 재량에 백지 위임해버린 ‘입법의 공백’이 아
검찰개혁은 오랜 시간 한국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권력의 집중을 분산시키고, 수사와 기소의 균형을 맞추며,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개혁은 이제 어느 정도 제도적 완성단계에 다다르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마냥 안도감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불안이 고개를 든다. 바로 경찰이다.검찰의 권한이 줄어든 만큼 경찰은 더 큰 책임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의 모습을 보면 그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사건수사에서 보여주는 허술한 대응, 사회적 갈등 상황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는 오랜 인연이 끝나는 순간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한 지인과의 절교는 단순한 결별이 아니라, 관계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사건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곧 신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관계를 지탱하는 힘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이다.처음의 도움은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작은 배려에도 상대는 감사하며, 그 감사가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호의가 습관이 되고, 결국 의무처럼 여겨질 때 관계는 균열을 맞는다. 감사 대신 당연함이 자리
AI가 기업의 경쟁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전 세계에서 AI를 가장 잘 쓰는 상위 5% 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평균의 60~70%를 웃돈다. 기술을 빨리 도입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작 이 격차를 키우는 요인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을 움직이는 힘, 즉 리더십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장진석 파트너가 말하는 ‘10-20-70 법칙’은 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AI 성공의 70%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조직·문화·리더십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 한국 기업·공공조직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점이다.한국의 많은 조직은 여
지난달 부산에서 벌어진 한 고등학생의 죽음은 우리사회가 응급의료 체계의 허점을 얼마나 방치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경련 증세로 쓰러진 학생은 신고 후 1시간 20분 동안 무려 14곳의 병원에서 거절당했다. 구급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분류기준에 따라 긴급환자로 지정하고,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 연락을 돌렸지만 돌아온 답은 “소아진료 불가”였다. 심지어 심정지 상태에서도 “소아 심정지 불가”라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한 병원도 있었다. 결국 15번째 병원에서야 수용됐지만 이미 골든타임은 지나 있었다.이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부산은 한때 400만 명을 눈앞에 두었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325만 명으로 줄었고, 지난 10년 동안 26만 명이 사라졌다. 더 뼈아픈 사실은 그중 대부분이 청년이라는 점이다. 15세에서 39세 사이의 인구가 29만 명 줄어들면서, 부산은 더 이상 ‘청년의 도시’라 부르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대신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며, 광역시 중 최초로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다. ‘노인과 바다’라는 별칭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도시의 현실을 압축하는 표현이다.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AI 시대에는
AI의 등장을 두고 세계는 낙관과 공포 사이를 오간다. 어떤 이는 “AI가 일자리를 없앤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직업은 남고 직능만 바뀔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재욱 교수는 이 논쟁이 한국 사회에서는 본질을 비껴간다고 지적한다. 진짜 위기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감당할 준비가 없는 사회 구조라는 것이다.한국은 이미 비정규직과 초단기 계약이 만연한 노동시장을 갖고 있다. 사회 안전망은 OECD 최하위권이고, 재교육 시스템은 취약하다. 이런 조건에서 직능 변화는 곧바로 실업과 소득 붕괴로 이어진다. 유럽 노동자는 재
6년 전, 국민의 눈앞에서 벌어진 ‘패스트트랙 저지 사건’은 국회의 품격을 땅에 떨어뜨린 사건이었다. 법안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번지며 국회는 ‘동물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른 끝에 내려진 1심 판결은, 당시 국회의원과 보좌진 26명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재판부는 분명히 말했다. “물리적 저지는 국회의원 면책 특권에 해당되지 않고, 저항권 행사로 볼 수도 없다.” 이는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시킨 선언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폭력으로 행사하는 순
지난 11월 6일 울산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는 7명의 노동자를 앗아간 참혹한 비극이었다. 산업도시 울산은 깊은 슬픔에 잠겼고, 우리는 또다시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되새기게 되었다. 희생된 노동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 그러나 애도의 순간을 넘어, 우리는 이 반복되는 죽음의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처벌 강화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죽음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이후 제정된 ‘김용균법’,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 속에서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구조적위기, 교육과 노동개혁의 지연, 검찰과 사법부의 신뢰 붕괴는 이미 사회적 기반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의 눈과 귀라 할 수 있는 정보역량의 무력화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기능이 폐지되고, 기무사가 해체되었으며, 경찰청 정보국만 남은 현실은 사실상 무장해제에 가까운 상태다.일본은 다른 길을 택했다. 중국의 첩보공작을 “조용한 침공”이라 규정하며 대응 역량을 총리실 직속으로 집중시켰다. 내각 정보조사실, 공안조사청, 경찰청
정치인의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인식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거울이며, 때로는 한 사회의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최근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이 김예지 의원을 향해 “장애인 할당이 문제”라는 발언을 했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더 나아가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이라는 모욕적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실언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문제다. 여성과 장애인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인식수준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김예지 의원은 시각장애를 가진 정치인이다.
부산문화회관이 감사위원회의 중징계 요구를 경징계로 축소하고, 해당 간부를 연임까지 시킨 사실은 단순한 인사문제를 넘어 공공기관 운영의 근본을 흔드는 사건이다. 감사위원회가 ‘승진무효’와 ‘중징계’를 명확히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은 자체 인사위원회를 통해 ‘감봉 3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뒤, 그 인사는 최고 평정을 받아 연임에 성공했다.이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하다. 첫째, 감사제도의 권위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감사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공공기관의 규율을 바로잡는 제도적 장치다.
2026학년도 수능시험이 끝났다. 수험생들은 긴장과 불안 속에서 시험을 치렀고,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만 남았다. 그러나 시험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교육의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고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다.우리사회의 공부문화는 오랫동안 암기에 의존해왔다. 수학공식은 왜 그런지 이해하지 않아도 외워서 쓰면 칭찬받고, 과학원리는 구경만 하다가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암기하면 충분했다. 아이들은 “모르면 외우면 되지”라는 사고에 익숙해졌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 왜? 어떻게? ―
부산은 바다와 항만으로 성장한 도시이다. 그러나 최근 건축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사고는 이 도시의 안전 기반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리제도는 본래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하지만 지금 부산의 현실은 감리가 서류 속에만 존재하고, 현장은 방치된 채로 남아 있다.지난 2월 기장군 오시리아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공사장에서 발생한 대형화재는 그 단적인 사례이다. 공정률이 80%에 불과했는데도 사용승인이 이루어졌고, 허위감리보고서가 제출되었음에도 소방당국은 현장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조란 맘다니의 뉴욕시장 당선은 단순한 지역 정치의 승리를 넘어, 미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른바 ‘맘다니 효과’는 이념을 넘어선 생활정치의 복원이라는 흐름을 보여준다. 맘다니는 부유세, 임대료 동결, 무료 대중교통이라는 파격적 공약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했으며, 이는 추상적 이념보다 구체적 삶의 언어가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맘다니 효과는 ‘정치는 결국 경제적 체험의 언어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뉴욕 유권자들은 ‘공정’이나 ‘정의’보다 월세, 버스요금, 소득격차 같은
대한민국은 지난 3년 동안 깊은 혼란과 불안의 시간을 지나왔다. 국정의 기본 틀이 흔들리고, 행정의 신뢰가 무너진 채 국민의 삶은 표류하는 배처럼 방치되었다. 경제·민생·외교·안보·행정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시기는 현대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국정 난맥으로 기록될 것이다.그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무책임한 국정 운영, 전문성을 외면한 인사, 정치적 보복과 갈등 조장, 민생에 대한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인사실패는 국가운영의 효율성을 무너뜨린 핵심 요인이었다. 능력보다 충성, 전문성보다 측근을 앞세운 결과 각
2020년 9월 21일,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대준 씨는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실종되었다. 그가 탄 어업지도선은 평소처럼 조업 지도 업무를 수행 중이었고, 실종 당시 선상에는 그의 신발만 남겨져 있었다. 다음 날, 그는 북한해역에서 발견되었고,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후 그의 시신은 불태워졌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하지만 더 큰 충격은 그 이후에 찾아왔다. 정부는 이대준 씨의 죽음을 ‘자진 월북’으로 규정했고, 유가족에게는 설명되지 않는 낙인과 고통이 남겨졌다. 아들은 국민청원을 통해 “아
국민의힘이 11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했다.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않고, 로텐더홀에서 침묵시위를 벌이는 방식으로 항의의 뜻을 밝혔다. 그들은 검은 정장과 근조리본을 착용하고, ‘자유민주주의 사망’, ‘야당탄압 불법특검’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대통령이 국회에 도착하자 일부 의원들은 “범죄자 왔다”, “재판받으세요” 등의 고성을 쏟아냈고, 대통령이 인사를 건네자 “악수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라는 말까지 나왔다.국민의힘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며, 이를
지난 10월 30일 밤, 서울 강남의 한 치킨집에서 벌어진 ‘깐부회동’은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함께 치맥을 즐기는 모습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그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바로 엔비디아의 최신 GPU 26만 장을 한국이 확보하는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 계약이었다. GPU 26만 장이라는 숫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한 장당 약 4천만 원, 총액은 10조 원을 넘는다. 이는 서울
지난 반년 간 대한민국은 정치적 격랑을 지나왔다. 비상계엄령 발동, 전직 대통령 탄핵, 그리고 신임 대통령의 취임까지—국민은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민주주의의 회복과 국가의 안정을 기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 막 안정을 찾아가는 시점에, 전국교수모임(전교모)이라는 교수단체가 조기정권교체를 요구하며 대미관세협상을 다시 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단순한 의견표명을 넘어, 국가적책임과 외교적 현실을 외면한 위험한 정치개입으로 읽힐 수 있다.지성의 책무는 무엇인가?교수는 사회의 양심이자 지성의 상징이다. 그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