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부산에서 벌어진 한 고등학생의 죽음은 우리사회가 응급의료 체계의 허점을 얼마나 방치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경련 증세로 쓰러진 학생은 신고 후 1시간 20분 동안 무려 14곳의 병원에서 거절당했다.

구급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분류기준에 따라 긴급환자로 지정하고,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 연락을 돌렸지만 돌아온 답은 소아진료 불가였다.

심지어 심정지 상태에서도 소아 심정지 불가라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한 병원도 있었다.

결국 15번째 병원에서야 수용됐지만 이미 골든타임은 지나 있었다.

이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법적으로는 성인에 가까운 나이지만, 병원들은 소아라는 분류에 묶어 진료를 거부했다.

나이와 분류의 경계에서 환자는 제도의 틈새로 떨어졌다. 응급실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데, 그 보루가 문턱을 높여 환자를 외면한 셈이다.

구급대원들은 현장에서 환자에게 붙어 응급처치를 하면서도 동시에 병원 수용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손이 모자란다는 절박한 요청은 녹취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시스템은 그 절박함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골든타임은 병원들의 거절 속에서 무너졌고, 결국 한 생명이 꺼져갔다.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병원은 인력과 시설부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응급실은 가능 여부를 따지기 전에 살려야 한다는 원칙이 우선되어야 한다.

소방과 구급대는 환자를 분류하고 이송했지만, 결국 병원 문턱에서 좌절했다.

이는 특정병원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응급의료 체계 전반의 구조적 결함이다.

이제는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고등학생을 소아로 분류해 진료 거부가 이어진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중증환자는 병원사정과 무관하게 일단 수용 후 치료를 시작하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인접 지역과의 신속한 협력체계도 구축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구급상황관리센터가 단순히 연락을 중계하는 수준을 넘어, 환자수용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학생의 죽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응급실 뺑뺑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기회가 제도적 허점 때문에 사라진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응급실은 선택지가 아니라 필수다. 제도가 환자를 외면하는 순간, 그 제도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더 이상 응급실 뺑뺑이라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응급의료체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금이 바로 행동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복지TV부울경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