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불참은 세계질서의 균열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이 빠진 자리를 메우는 것은 자연스럽게 유럽연합(EU)이며, 그 중심에는 독일이 있다.
독일은 그동안 EU와 NATO의 맹주 역할을 공식적으로 자임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책임과 프랑스의 견제,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맹주역할은 피곤하다’는 인식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미국 없는 시대가 현실화되면서 독일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독일의 움직임은 단순히 유럽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EU는 러시아를 견제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한국의 대중국 태도를 주시하며, 이를 통해 EU의 대중 정책 방향을 모색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는 특정 정치인의 입장을 묻는 것이 아니라, 독일이 EU의 맹주를 자임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동아시아 전략에서도 독일의 시선은 분명하다. 미·중 간 신(新) 얄타 질서가 형성될 경우, EU는 일본과 한국 중 어느 쪽과 더 긴밀히 협력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최근 독일과 일본 간 연대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EU가 동아시아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읽힌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으며, 미국과의 관계는 점차 부차적 요소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독일 내부 정치가 이러한 야심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민주주의 후퇴와 신권위주의의 부상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독일 정치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내부 정치적 동력이 부족하다면 EU의 맹주 역할은 공허한 선언에 그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중국·러시아가 글로벌 질서 주도에 실패한다면 EU, 특히 독일이 새로운 질서의 창출자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독일의 선택은 단순히 유럽의 미래를 넘어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략적 결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은 이제 미국과의 관계가 점차 부차적이 되는 가운데,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새로운 외교적 선택을 내려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