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기업의 경쟁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전 세계에서 AI를 가장 잘 쓰는 상위 5% 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평균의 60~70%를 웃돈다.
기술을 빨리 도입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작 이 격차를 키우는 요인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을 움직이는 힘, 즉 리더십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장진석 파트너가 말하는 ‘10-20-70 법칙’은 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AI 성공의 70%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조직·문화·리더십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 한국 기업·공공조직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많은 조직은 여전히 ‘AI=기술 프로젝트’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AI를 도입한다고 하면 모델을 무엇으로 할지, GPU가 얼마나 필요한지, 데이터를 어떻게 모을 지만 따진다.
이는 전체 과정의 고작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를 차지하는 조직 재편·권한 조정·업무 방식 변화·심리적 저항 관리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실제로 AI 도입이 실패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다. 조직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AI가 내 일자리를 대체하는가”라는 불안을 호소하지만, 조직은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는다. 중간관리자는 보고 라인과 승인 권한이 AI에 잠식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보이지 않게 저항한다.
조직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리더는 기술 도입 뒤에 숨어 조직의 근본적 재설계라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를 피한다. 이는 단순한 지체가 아니라 리더십의 기능 부전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조직문화의 고질적 특성이다. 위에서 말하면 아래가 따른다, 성공은 리더의 공, 실패는 실무자 책임, 업무방식은 바꾸지 않으면서 혁신만 외친다.
이 구조에서 AI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AI 도입은 ‘어떤 기술을 쓰느냐’ 이전에, 누가 결정권을 갖고,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책임질지를 다시 정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핵심 질문이 조직 내부에서 제대로 논의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AI 선도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특징은 단순하다.
기술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한다는 것이다.
마케팅 부서는 AI 에이전트 기반으로 재편되고, 구매·품질·공급망에서는 AI가 1차 판단을 내리고 사람은 감독자 역할로 이동한다.
연구개발에서도 AI가 초기 탐색을 주도하고 연구자는 전략적 검증에 집중한다. 이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권한 구조와 일하는 방식의 재정의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기업과 공공조직은 여전히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환상에 머물러 있다. 이 환상은 빠른 도입이 장점이 아니라, 위기 그 자체가 된다.
기술은 누구나 도입할 수 있지만, 조직의 심리적 저항을 관리하고 새로운 운영 모델을 정착시키는 리더십 역량은 결코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제조업이 관심을 갖는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 모델도 마찬가지다. AI를 활용해 해외공장을 통합 제어하는 전략은 혁신적이다.
그러나 기술적 성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본사와 해외공장 사이의 권한 재배치, 의사결정구조, 책임체계다.
AI 시스템을 수출한다는 것은 결국 조직운영 모델을 수출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기술이 아닌 조직능력의 문제다. 지금 우리는 그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한국사회는 지금도 AI를 국가전략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정부도, 기업도, 언론도 한목소리로 혁신을 외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묻지 않는다.
“이 변화가 가져올 권한 이동과 조직 충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술을 먼저 갖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충격을 흡수하고,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조직의 근육을 기르는 일이다.
그 근육을 키우는 것은 오로지 리더십의 역할이다. AI 시대의 위기는 기술 공백이 아니다. 리더십 공백이다.
기술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조직의 변화력을 키우는 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AI 시대의 승자는 기술을 가진 자가 아니라, 조직을 바꿀 용기를 가진 자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