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인간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물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살면서 끊임없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간혹 적절한 선택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개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개척이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조선시대 여인 허난설헌은 문학을 사랑하고 지성과 덕성을 고루 갖춘 인물이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고난의 삶을 살다가 갔다. 그녀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허난설헌이 행복을 추구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다시말해 고통을 즐기는 정신이상자가 아닌 이상, 그녀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것 뿐이다.

 '인간의 운명'이란 책에서 소콜로프는 비행기 제조 공장 그넟에 집을 지었다. 당연히 자신이 선택 한 것이다. 그 선택으로 인해 적군의 폭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소콜로프는 불행해지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것일까? 아니다. 소콜로프는 전쟁이 일어날 줄 몰랐다. 전쟁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콜로프는 인생, 혹은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수많은 선택 중 '잘못된 선택'을 한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살아가면서 하는 선택'을 한 것 이다. 다만 그런 불행속에서도 보람과 가치를 추구하는 의지가 그를 삶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마냥 운명은 비관적이지 않다. 불행도 있다면 행복도 있다. 아무도 모를 뿐. '인간의 운명'의 마지막 장면은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한 때 행복했지만, 처참한 불행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 소콜로프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홀로 남은 소년과 숲속을 걸어 나가는 장면이다. 소년은 뒤를 돌아보고 '나'에게 손을 흔든다. 씁쓸하지만 결코 불행해 보이진 않는다. 앞으로 소년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는 누구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과는 별개로 행복과 불행은 교차하며 아이에게 다가올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결정된 삶에 어떻게 맞서느냐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처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극복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있다. 사연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갈 정도로 절박한 삶들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 지 조금이라도 상상해 본다면 주어진 상황을 수용할 수 있다. 인생을 다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내 운명은 불행하다고 확신하지 말라고 '인간의 운명'의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떤 결정된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도망가지 말고 지켜보는, 소콜로프의 의지를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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