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계절이 끝났다.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리고, 일본의 재팬시리즈와 미국의 월드시리즈도 모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어떤 시리즈는 싱겁게 끝났고, 어떤 시리즈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과정이 어떻든, 야구는 잠시 우리 곁을 떠났다.
부산의 가을은 더욱 쓸쓸하다. 롯데 자이언츠는 올 시즌 중반까지 3위를 유지하며 가을야구 진출을 기대케 했지만, 12연패라는 충격적인 부진 끝에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팬들의 허탈함은 깊었고, 그 속에서 한 이름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로 최동원이다.
최동원 팬클럽 하정태 대표는 “이럴 때면 시민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있어요. 바로 최동원입니다. 그는 단순한 투수가 아니었어요. 부산의 자존심이었고, 희망이었죠”라고 말한다.
1984년, 롯데는 우승후보가 아니었다. 삼성과 OB에 비해 전력이 약했던 중위권 팀. 그러나 최동원은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4경기 완투승, 1경기 구원 등판이라는 믿기 어려운 기록을 남기며 롯데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시리즈 성적은 4승 1패. 그 중 4승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그는 기록보다 헌신으로 기억되는 선수였다.
승리수당을 2군 선수들에게 나눠주고, 선수협 창립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걸었던 그는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싸운 진정한 리더였다.
당시 연봉으로 아파트 2~3채를 살 수 있었지만, 그는 돈보다 정의를 택했다.
2025년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4주기 되는 해다. 2011년 9월 14일, 대장암 투병 끝에 향년 53세로 별세한 그는 지금도 부산시민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하정태 대표는 “11월이 되면 그가 눈물 나게 그립습니다. 야구가 끝나면, 우리는 그를 다시 떠올립니다. 기록보다 위대한 단 한 명의 선수. 팀보다 큰 존재. 그가 바로 최동원입니다”라고 말했다.
야구는 끝났지만, 최동원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가 남긴 투혼과 헌신은 지금도 롯데 팬들의 가슴 속에 불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11월, 부산은 다시 그를 기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