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본사 앞 철탑 위에서 한 노동자가 90일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살기 위해 싸운다”는 그의 외침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철탑 아래에서 도시의 시민들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싸움이 끝난 뒤, 누가 살아남았을까.”
현대제철은 결국 미국 루이지애나로 떠나기로 했다. 8조 5천억 원을 투자해 연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루이지애나에는 5천 개의 일자리가 생기지만, 한국에는 설비 축소와 생산축소가 남는다. 기업은 싸우지 않는다. 갈등이 깊어지면 조용히 떠난다.
군산은 이미 그 경험을 했다. 2018년 한국 GM이 공장을 폐쇄하고 떠난 뒤, ‘미니 디트로이트’라 불리던 도시는 텅 빈 디트로이트가 되었다.
평택 쌍용차도 77일간의 점거파업 끝에 중국계에 매각되었고, 일부 노동자만 복직했다.
통영과 진해의 조선소들은 파업과 부실경영 끝에 법정관리로 들어갔고, 지역경제는 지금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불 꺼진 가게, 멈춘 버스, 줄어든 학생. 남겨진 것은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다.
대출은 그대로 남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정치인은 다른 이슈로 떠나갔고, 기업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노조는 싸움에서 이겼다고 말하지만, 도시 전체는 패배했다.
과거에는 달랐다. 경제가 성장하던 시절, 직장 내 밴드부가 있어 노사가 함께 노래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회사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풍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불신과 미움만 남았다.
대한민국의 여러 도시가 인구소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 태백, 삼척, 문경, 남원, 김제, 동두천… 산업이 떠난 자리에 사람도 떠나고 있다.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떠나고, 노조는 싸운다. 그러나 남겨진 시민들은 이 도시에서 삶을 이어가야 한다.
불 꺼진 공장과 텅 빈 상가 속에서, 그들은 묻는다.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